[르포]언제 또 덮칠지…여진 공포 속 포항주민들 탈출 행렬

by유현욱 기자
2017.11.16 17:11:12

평일 역사 승객들도 북적, "가족과 고향 잠시 떠나려"
27개 대피소에 1536명 이재민 여진에 안절부절
관계부처 장관 이어 여야 지도부도 피해 현장 총출동

16일 오후 포항 북구 흥해읍 중성리 인근 민가에서 대민지원에 나선 해병대 신속기동부대 장병들이 지진피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항=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겁에 질린 애가 울고 보채는 탓에 견딜 수가 있어야죠. 좀 잠잠해 질 때까지 당분간 대구 시댁에 가 있을 생각입니다.”

16일 오전 9시 포항 북구 흥해읍 KTX포항역사. 한 손에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손엔 캐리어를 끌고 가던 김모(34)씨는 “계속되는 여진으로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예정됐던 이날 역사는 평일임에도 오전부터 포항을 벗어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내려앉은 천장 안전점검을 하던 역사 직원은 “포항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언론사 기자들”이라며 “지진 공포에 시민들은 외곽으로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에서 약 5㎞ 떨어진 흥해실내체육관은 지진 피해로 갈 곳은 잃은 이재민들의 대피소로 변해 있었다. 진앙지에서 가까운 흥해읍과 양덕·장성동 등 주민 800여명이 불안감에 떨며 임시로 머물고 있었다.

가족과 분가해 혼자 살고 있다는 최종렬(56)씨는 “집이 난장판이 됐는데 정리도 못 하고 버선발로 뛰쳐나왔다”며 “여진이라도 잦아들어야 돌아가 볼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손명진(16)양은 “남동생이 어제 지진으로 유리가 깨지면서 팔에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큰 부상이 없었기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례 없는 지진 사태에 여야 지도부는 현장에 총출동했다.

오전 10시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를 시작으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흥해실내체육관을 찾아 시민들을 위로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6일 오후 지진피해지역인 포항시 한동대를 방문해 지진피해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재난에는 여야가 없으니 힘을 모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건물 외벽이 떨어져 나가는 등 큰 피해를 입은 한동대 학생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일요일인 19일까지 임시 휴교를 결정한 한동대는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김용직(25·경영경제4)씨는 “수업 시간을 앞두고 강의실로 가는 길에 가장 큰 지진을 느껴 부랴부랴 짐을 챙긴 뒤 새벽에 지인 차를 얻어타고 대구 본가로 왔다”며 “아직도 심장이 두근두근 뛸 정도”라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시내 곳곳은 건물 외벽 일부와 담벼락에 금이 가 무너져 내릴 듯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했다.

평소 같으면 북적였을 노인정은 텅 비어 있었다. 박모(79) 할머니는 “출입이 통제돼 꼭 필요한 약 따위를 가지러 갈 때 소방대원과 함께 들어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인터넷 케이블이 끊어지거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평소 하루에 서너 건 정도 수리 요청이 들어오는데 오늘 벌써 스무 건이 넘었다”며 “건물이 기울어져 옥상에 올라갈 수 없는 곳은 허탕을 치고 돌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용실을 하는 원창연(57)씨는 “올 가을 들어 기온이 처음 영하로 떨어졌는데 보일러가 고장난 탓에 방 안이 냉골”이라며 “주민센터 직원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발을 굴렀다.

문화재 피해 사례도 속속 드러나면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이 실태 파악에 나섰다.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이후 복원한 흥해향교 건물은 지진이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 건물 외부 기와가 무너져 내리고 내부 벽면도 떨어져 아수라장이었다.

여진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택시 기사 이모(45)씨는 “오전 9시쯤 규모 3.8의 여진이 발생했을 때 11차로인 형산큰다리가 휘청이는 걸 느꼈다”며 “전날 지진 때는 차체가 앞뒤 좌우로 마구 흔들리는데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니 담장이 무너지고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이었다”고 돌이켰다.

막대한 피해 속에 구호물품 전달 등 온정의 손길도 이어졌다. 마대자루를 들고 거리에 쏟아진 잔해를 치우는 의용소방대원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