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탠트럼' 트라우마…장기금리 또 급등할까(종합2보)

by김정남 기자
2017.02.21 17:02:31

고요하던 채권시장, 정부 발표에 변동 폭 커져
21일 장기물 채권 중심으로 금리 상승세 지속
트럼프노믹스 강도 따라 '금리 급등' 가능성도

최근 4거래일간 국고채 10년물, 20년물, 30년물의 금리 추이다. 최근 장기물을 중심으로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출처=마켓포인트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연초 고요하디 고요하던 채권시장이 화들짝 놀랐다. ‘트럼프 리스크’에 숨죽이다가 모처럼 크게 움직인 것이다.

이는 예상치 못한 정부의 ‘채권수익률곡선 정상화’ 의지가 나오면서다. 채권수익률곡선(일드커브)은 만기까지 기간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수익률의 변동을 나타낸다. 장·단기 금리 차이가 작아지면 곡선은 평평한 형태(커브 플래트닝)가, 금리 차이가 커지면 가파른 형태(커브 스티프닝)가 각각 만들어 진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전날 “현재 수익률곡선이 연물별로 매우 평평한데 일정 정도 곡선이 나오도록 정상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장기채권의 발행을 늘려서 수익률곡선을 가파르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눌린 장기금리를 더 올리겠다는 의미다.

채권시장은 현재 트럼프노믹스에 휘둘리고 있기는 하다. 다만 이런 정부의 의지가 대외 이슈와 맞물리면 추후 장기금리는 또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서울채권시장에서 장기물인 국고채 10년물(2.202%)과 단기물인 3년물(1.671%)간 금리 차이는 0.531%(53.1bp, 1bp=0.01%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장기물 금리가 상대적으로 큰 폭 올랐던 전거래일 51.4bp보다 그 차이가 더 확대된 것이다.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2.2%대로 오른 건 지난해 12월13일(2.202%) 이후 처음이다.

초장기물 금리의 상승 폭은 더 컸다. 이날 2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각각 4.0bp, 3.7bp 상승한 2.260%, 2.261%를 기록했다. 50년물 금리는 3.7bp 올랐다.

국채선물시장도 50년물 발행 소식 여파에 10년 국채선물(LKTBF)이 18틱 하락한 124.82에 거래를 마쳤다. 틱은 선물계약의 매입과 매도 주문시 내는 호가단위를 뜻한다. 틱이 내리는 건 그만큼 선물가격이 약세라는 의미다. 특히 외국인은 10년 국채선물을 3764계약 순매도하며 약세장을 주도했다.

전날 장 막판 송 차관의 발언이 나오면서 변동 폭이 커졌고, 그 여진이 이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국내 장기금리가 과도하게 낮은 수준이라는 게 낯선 얘기는 아니다. 장단기 금리가 너무 ‘붙어있는’ 게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기재부 뿐만 아니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도 이같은 지적을 꾸준히 해왔다. 미국의 국채 10년물 금리와 단순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금리가 더 낮다.

하지만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국고채 50년물 발행 소식도 갑작스러웠고, 송 차관의 언급도 불만스럽다”면서 “당국은 시장과 소통을 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리가 급등하면 채권 평가손실이 현실화할 수 있어 시장 참가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부가 수익률곡선을 세우겠다는 말을 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는 말도 나왔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3000억원 규모의 국고채 50년물이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는 될 것”이라면서도 “설익은 상태에서 (발행 소식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송 차관의 발언이 원론적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성윤 현대선물 연구원은 “정책 의도와는 무관하게 초장기물 국고채 발행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원론적 발언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이날 금리 상승 폭도 예상보다 크지는 않았다.

다만 주목되는 건 국내 수급 이슈가 추후 트럼프 리스크와 맞물릴 가능성이다. 최근 채권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정정책만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이례적인 ‘매파(통화긴축 선호)’ 발언도 시장에서 힘을 못 썼을 정도다.

만에 하나 트럼프노믹스의 강도에 따라 미국 채권금리가 박스권을 뚫고 상승하면, 국내 시장도 다시 금리 급등의 충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트럼프 탠트럼(트럼프 발작·금리 급등)’ 트라우마가 다시 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대외 요인이 금리 결정의 결정타”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개편안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따라 국내 장기금리가 더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과 참가자들은 물가 상승세도 눈여겨 보고 있다. 최근 대내외를, 품목을 가리지 않고 물가는 거침없이 오르고 있다. 금리가 상승 방향을 잡을 경우 더 부채질 할 수 있는 재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전월 대비 1.3% 상승했다. 지난 2011년 1월(1.5%) 이후 6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소비자물가도 당분간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