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재택근무 실험..업무한계 Vs 또다른 기회
by김영수 기자
2020.03.05 16:26:46
기업들, 지난달 말부터 재택근무 확산..코로나19 악화에 연장 검토
재택근무 장기화에 업무효율 논란..일·가정 양립 모색 기회 의견도
재택근무 IT 솔루션 이용 급증..원격제어·화상회의도 불편 호소
일부 中企, 재택근무 불가능 애로..정부 지원 등 확대 필요성 제기
맞벌이 부부인 박수정(37)씨는 4살 아들이 먹을 아침을 차리고 출근 대신 근무를 준비한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에 회사 측이 전 직원에 대한 재택근무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실시하지 않는 박씨의 남편이 종전처럼 출근하고 난 후 친정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러 왔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급하게 ‘엄마 찬스’를 쓸 수밖에 없었다.
오전 일과를 마친 박씨는 점심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했다. 회사에 출근하면 구내 식당이나 외부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할텐데 식사를 차리고 아이를 먹이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창 업무에 집중하는 새 아이가 와서 “밖에 나가고 싶다”고 조른다. 방 하나를 사무실과 비슷하게 꾸미고 아이를 대신 돌봐줄 어머니까지 모셨지만 시시때때로 아이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업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박씨는 업무를 마치고 노트북을 닫았다. 회사 직원들 또는 거래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조율할 일도 있지만 어쩔수 없는 재택근무 때문에 유선상으로만 전달하려니 개운치 않다.
[이데일리 김영수 강경래 경계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직장인들의 일상을 한순간에 바꿨다. 코로나19가 세계적 유행병인 ‘팬더믹(pandemic)’으로 확대될 우려에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더 연장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준비되지 않은 재택근무 실험은 계속될 전망이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가장 큰 논란은 업무 효율성이다. 한 공간에서 함께 근무할 때와 달리 메일, 모바일 메신저, 전화 등을 통해 의사를 교환하다보니 외려 결론에 도달하는 데까지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간 대면 소통에 익숙했던 직장인들이 온라인으로 바꾸다보니 겪는 시행착오인 셈이다.
완성차 B기업 관계자는 “대면으로 했을 때 30분이면 해결될 일을 2시간 넘게 걸린 적이 있었다”며 “얼굴을 마주볼 때와 달리 글로만 의견을 전달하다보니 의견이 왜곡돼 전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업 등 일선에서 뛰어야 하는 부서는 업무 진행 속도가 더 더디다. IT업계 C기업 영업부서 직원은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영업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그런데도 회사는 영업실적을 요구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둔 직원은 재택근무가 더 고역이다. 코로나19에 초·중·고교가 개학을 연기했고 어린이집, 유치원도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정부가 돌봄교실을 운영한다곤 하지만 이런 때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돌봄교실을 보내기도 마땅찮기 때문이다. 항공사 D기업 관계자는 “시간을 쪼개 아이를 돌보면서 일할 수 있어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업무 집중도는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직원들의 자리가 비어있다. 소셜커머스 기업인 티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경보 격상에 따라 직원들의 건강관리와 지역사회 전파 방지 차원에서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실시한다. 재택근무 기간은 상황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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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재택근무자들중에서는 화상회의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P회사 관계자는 “회사에서는 담배나 커피 등 사적인 행동을 위해 자리를 비울 때 대체로 눈치를 보지 않는 편인데, 재택 근무 중에는 연락이 닿지 않거나 화상회의 공지를 못보고 참석을 못할 경우에는 놀고 있다고 생각할까봐 더 눈치 보게 된다”고 전했다.
반면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해외 기업들처럼 우리 나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근무제도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번 재택근무 경험을 토대로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유연근무제 확산 등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소득이라는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재택근무에 따른 업무 효율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일·가정 양립을 꾀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며 “기업뿐 아니라 정부 등 관련 주체들은 재택근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으로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있지만 일부 중소기업은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중소기업, 특히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 거래처 납기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가동을 멈출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며 “재택근무를 시행할 수 없는 회사 상황을 직원들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 충남 천안 뿌리산업 업체 삼천리금속. 회사 직원 중 절반인 30여명 가까이가 60대 이상 고령 근로자다. (사진=김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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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뿌리산업의 경우 재택근무는 ‘그림의 떡’이다. 뿌리산업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6개 뿌리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을 말한다.
한 주물업체 대표는 “장치·장비로 쉴 새 없이 생산라인을 돌려야 하는 뿌리기업에 재택근무나 단축근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감염병에 취약한 고령 근로자도 많아 마스크나 손소독제 등 물품이 필요하지만 이조차 구하기 어려워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욱조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뿌리산업 등 상당수 중소기업은 현장 근무가 필요한 만큼 현실적으로 재택근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코로나19 등에 따른 경영 악화로 직원들이 휴직할 경우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 확산에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원격제어 및 화상회의 솔루션 수요도 늘고 있다. 실제 국내 최대 원격지원 솔루션업체 알서포트(131370)에 따르면 이 회사가 제공 중인 재택근무 서비스 이용 신청 기업(단체)은 지난 2일 300여 곳을 기록했다. 지난 주에도 일평균 신청 건수가 200개에 달했으며 앞으로도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화상회의 사용량도 지난 3일 기준으로 두 달 전과 비교해 22배나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