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애초 내정 없었다" vs 박상희 "대기업 반대 당황스럽다"
by신정은 기자
2018.02.22 20:20:20
회장도 부회장도 없는 경총..''사상초유'' 지도부 공백 사태
| (왼쪽부터)김학권 인천경총회장, 박상희 대구경총 회장,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이성기 고용부 차관,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 회장,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조규옥 전방 회장, 김영태 SK 부회장, 박복규 택시연회장, 조용이 경기경총회장, 박동기 롯데월드 대표(경총 감사) 등이 22일 오전 서울 조선호텔에서 제49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정기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경총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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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노사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1970년 설립된 이후 반세기 동안 역대 회장이 단 6명이었다. 그만큼 노사 관계에 정통하면서 사용자 측을 대변할 적임자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은 재계에 알려진 공공연한 사실이다.
경총이 사상 처음으로 회장과 상임 부회장 자리까지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지난 21일까지만 해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역임한 박상희 대구경총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22일 정기총회에서 이 안건은 상정되지도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경총은 국내 경제 5단체 중 하나로, 노사문제를 전담하는 전국 조직으로 사용자를 대표하고 있다. 경총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김영배 경총 상임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청와대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제49회 경총 정기총회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당초 경총 회장은 박병원 회장이 연임할 것으로 점쳐졌다. 박 회장은 그동안 연임에 뜻이 없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비춰왔지만 후임자가 마땅치 않은 데다 회원사들이 연임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총회를 사흘 앞둔 지난 19일 경총 회장단에서 박상희 대구 경총 회장을 추천했고, 당사자가 이를 수락하면서 막판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소기업인 출신이 처음으로 경총 회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박상희 회장 스스로도 “노사정 입장을 조율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박상희 회장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을 역임했고, 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과 2012~2016년 새누리당 재정위원장을 지냈다. 아울러 2010년부터 8년간 대구경총 회장을 맡아왔다.
그러나 막상 당일 총회 분위기는 달랐다. 박상희 회장의 선임 건은 전형위원회에서 논의되지도 않았다. 경총 전형위원회는 박병원 회장과 김영배 상임 부회장의 사임 요청만을 수락했으며 차기 회장을 찾을 때까지 회장과 부회장 자리를 당분간 공석으로 두기로 했다. 대신 박 회장에 명예회장으로 경총 활동을 지원해줄 것을 부탁했고, 박 회장은 이를 수락했다. 경총 전형위원회는 윤여철 현대자동차(005380) 부회장, 김영태 SK 부회장, 정지택 두산중공업(034020)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032640) 부회장, 박복규 경총 감사, 조용이 경기경총 회장 등 6명으로 구성됐다.
박상희 회장은 총회 도중 기자들을 만나 “원래 총회 진행 과정에 (추대 관련) 보고도 있어야 하는데 진행되지 않았다”며 “신임 회장 선임을 위한 전형위원회도 6명 중 중소기업 비중은 1명뿐으로 균형이 맞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이어 “회장단에서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해서 수락했는데 이제와서 대기업들이 반대하니 당황스럽다”며 “지방경총 회원사들이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기대감이 높았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상희 회장의 주장과는 달리, 애초 ‘내정자’라는 말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게 경총의 설명이다. 지난 19일 열렸다는 회장단 모임 자리에는 박병원 회장은 참석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 회장이 없는 자리에서 차기 회장이 논의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이동웅 경총 전무는 “전형위원회는 여러 후보 중에서 적임자를 선임하기 위한 것이지 추대된 인물을 뽑는 것이 아니다”며 “공식적으로 내정이라는 절차는 없었고 다만 19일 회장단 모임 때 한 두분이 (박상희 회장에게)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사관계에 한 축을 맡고 있는 경총을 대표해 일자리 창출 등에 힘써줄 덕망과 경험을 가진 적임자를 바로 결정하지 못했다”며 “전형위원회는 박상희 회장을 포함한 여러 후보를 놓고 이르면 이달 내 차기 회장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상희 회장을 추천했던 인물로는 김영배 상임부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김 부회장도 이날 사임을 하면서 박상희 회장의 회장 선임은 사실상 물건너간 분위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박상희 회장은 기업인이기도 하지만 정치인이기도 하다”며 “정부나 국회에 연이 많은 것이 경총 회장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사용자 입장을 대변할 적임자 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대기업 회원사들은 손경식 CJ 회장을 신임 경총 회장으로 추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병원 회장도 기업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차기 회장이 되길 희망하고 있어 차기 회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