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병 투신, 北목선 사건과 개연성 충분한데…'선긋기' 한 軍

by김관용 기자
2019.07.10 17:11:49

北 목선, 삼척항 앞바다 있던 14일 저녁 상황근무
직접 조사대상 아니었어도 심리적 압박 가능성
'배려병사' 관리, 간부로부터 질책 정황도 드러나
지휘관 징계 등 부대 분위기, 투신에 영향줬을 수도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군 당국이 육군 23사단 소초 상황병 투신 사건을 10시간이나 늦게 언론에 설명하고, 조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목선 경계작전과는 무관하다며 선긋기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해당 병사는 북한 목선이 삼척항 앞바다에 있었던 시간에 근무를 섰던 것으로 드러나 또 축소 발표 의혹을 사고 있다.

지난 9일 군 당국은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접안한 6월 15일 새벽에 A일병은 상황근무를 서지 않아 직접 관련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사를 받은바 없다고 밝혔다. 조사대상도 아니었고 합동 조사단이 해당 소초현장을 확인했던 6월 24일에는 휴가중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일병은 북한 목선이 삼척항 인근 육지로부터 1.8해리(3.3km) 지점에 도착한 6월 14일 오후 9시에 삼척항 입구와 수제선(물과 땅이 닿아서 이루는 선)을 감시하는 소초의 상황 근무를 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근무한 사실은 빼고 발표한 셈이다.

특히 국방부는 앞서 병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난 3일 국방장관은 “관련자들을 법과 규정에 따라 엄중 문책할 것”이라며 엄포를 놨다. 이에 따라 실제 자신의 부대 지휘관이 징계를 받게 됐다. 부대 분위기가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A일병이 목선 경계작전 실패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심적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육군에 따르면 A일병은 ‘배려병사’로 관리를 받아왔다고 한다. 지난 4월 부대 전입 이후부터 부소초장 간부로부터 업무 관련 질책을 지속적으로 받은 부분도 확인됐다. 휴가 복귀 이후의 상황 등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군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북한 목선이 레이더에 탐지됐지만 이 소초는 레이더를 담당하는 소초가 아니었다”면서 “사망자는 상황병이지 레이더나 열영상감시장비(TOD)를 모니터하는 인원이 아니므로 조사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한 군 당국은 8일 저녁 9시께 A일병의 투신 이후 당일 11시쯤 주요 지휘관에게 관련 소식이 전파됐는데도 다음 날 오전 9시경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질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언론 발표 전 유가족과 협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유가족들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인데도 ‘A일병 사망은 북한 목선 사건과 무관하다’고 군 당국이 발표해 격앙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늑장 발표 지적에 육군 측은 “사고가 늦은 야간에 발생해 초기 수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언론 설명을 준비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유족 협의 관련 문제에 대해선 “SNS에 관련 내용이 먼저 게시됐고 기자들이 이에 대해 질의해 와 군이 설명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A일병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휴대전화 메모에도 부대 관련 내용이 없어 순직 인정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육군 23사단 소초 근무병이 해안 철책선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육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