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공격받는 한진家…재계 “불똥 튈까” 전전긍긍
by이소현 기자
2019.01.16 16:26:15
"국민연금 정치화될 우려"
"경영권 외부 입김에 흔들"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필두로 한진가(家)의 경영권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연금이 한진칼·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지 검토하면서다.
한진그룹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의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계는 앞으로 기업의 경영권이 외부 입김에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16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대한항공과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행사 여부 및 행사 범위를 검토하도록 결정했다. 주주권행사 이행 여부와 방식은 2월 초까지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한진그룹은 “그룹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히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로 시작된 한진 오너가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에 이어 이제 국민연금이 나서 경영권을 흔들고 있어서다.
한진 오너가에 대한 여론은 악화일로이며, 지난 15일 진행한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인의 만남에서도 조양호 회장은 초대받지 못했다.
한진그룹은 내부적으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자본시장법상 ‘단순투자’ 목적으로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주식을 투자하고 있어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려면 투자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꿔야하고, 지분 1% 이상 변동시 5일 이내 신고하고 6개월 이내 발행한 매매 차익은 모두 반환해야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고객과 수탁자가 맡긴 돈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주주 활동 등 수탁자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한 규범이다.
그러면서도 한진그룹은 과거 정치와 금융 논리로 산업 논리를 위협해 세계 1~2위를 다투던 한진해운이 몰락했던 경험이 있는 터라 경영권 위협에 긴장감을 놓지 않고 내부적으로 분주하게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본래 역할을 벗어난 상황과 정부의 과도한 기업 경영 간섭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근본취지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며 “과도한 경영권 개입이 민간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그룹 관계자는 “회사의 미래 발전을 함께 고민해야 할 투자자가 경영권 개입으로 회사 경영을 훼방 놓아서는 안된다”며 “한진그룹 오너일가 갑질 논란을 빌미로 순차적으로 기업들에 불똥이 튈까 봐 두렵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정치화될 것을 우려했다.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이고 당연직 위원 4명이 주요 부처 차관이다. 이처럼 정치권력으로 자유롭지 못한 한계가 있는데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에는 독립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한 방안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오전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을 경계한다’ 토론회에서 “독립성이 낮은 국민연금이 환경, 사회공헌, 지배구조 문제에 관여하게 되면 부당한 경영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주주의 이익과 상충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경우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ISD 소송을 당해 국제소송전으로 비화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학계도 국민연금의 경영참여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해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 할 수 없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 같은 근거로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하는 것은 헌법 제126조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한진그룹과 같은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법 제102조 2항에서 국민연금이 최대수익을 획득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사회적 가치를 위해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개입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2025년에는 국민연금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9%를 가질 것이라는 전망인데,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에 개입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라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의 사기업의 경영권과 관련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연금사회주의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을 맡고, 기금운용본부장도 정부가 검증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재벌개혁을 위한 관치로 이어져 연금사회주의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까지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완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이나 최대주주 등이 사익추구를 하는 경우 형법,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 여러 법에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면서 정치적 경영개입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