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투견' 단속에 줄행랑친 견주들…남겨진 건 다친 개들이었다 [애니멀워치]

by이재은 기자
2026.06.06 18:00:03

4월 대구 달성군 야산서 불법투견 도박판 적발
견주들, 개 들고 도망가거나 가드레일에 묶기도
피해견은 이빨 뽑히거나…털 빠지고 전신에 교상
운영진·일부 견주, 동물보호법 위반·도박 혐의 수사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의 시대. 동물은 가족이자 동반자로 불리지만, 여전히 많은 생명이 학대와 방치, 전시·오락 산업 등 사각지대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애니멀워치]는 동물 학대 사건과 구조 현장, 그 이후의 삶을 함께 기록합니다. 동물권 침해가 반복되는 원인과 제도의 빈틈을 짚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해 남겨진 과제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지난 4월 11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한 야산 공터 풀숲에서 구조된 투견 도박 피해견. 우리 안에 갇힌 채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에 의해 구조됐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제공)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얼굴과 눈에서 피 흘리는 개가 발견됐어요. 가드레일에 목줄이 묶인 개도 있었죠. 모두 견주가 내버려두고 도망친 거였어요. 그 와중 저희를 보고 꼬리를 흔드는 아이가 있더라고요. 주인은 자신을 투견 도박에 이용했는데 오히려 사람을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4월 11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의 한 야산 공터. 동물자유연대와 경찰이 불법 투견장을 급습했을 때 마주한 것은 상처 입은 개들과 범죄의 흔적이었다. 투견장에서 쓰이는 철제 링을 비롯해 간이 의자, 경기를 강제로 중단할 때 쓰는 도구, 수의약품 등이 남아 있었다. 조명, 체중계, 피 묻은 수건과 참가자들을 위한 간식용 어묵 트럭까지 현장에 있는 상태였다.

지난 4월 11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한 야산 공터에서 발견된 투견 도박판 증거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의약품과 주사기, 투견을 강제로 중단할 때 사용하는 도구, 피 묻은 수건, 체중계. (사진=동물자유연대 제공)
적발 전 촬영된 영상에는 참가자들이 “좋아, 좋아!”라고 외치거나 모자를 쓴 채 링을 둘러싸고 개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단속이 이뤄지자 참가자 상당수는 차량을 이용해 현장을 빠져나갔고 일부는 개를 안은 채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늦은 시간 도로를 메운 차량만 50대가 넘는 상황이었다. 일부는 활동가들을 향해 “너희는 법 다 지키고 사느냐”,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는 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4월 11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한 야산 공터에서 벌어진 투견 도박판.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등이 투견장 주변을 수색하는 모습, 현장 급습 후에도 남아 있던 철제 투견 링, 경찰 단속에 차량을 타고 현장을 빠져나가려는 참가자들, 적발 전 촬영된 영상 속 투견 장면. (사진=동물자유연대 제공)
투견에 이용된 개들…몸 곳곳 상처 안고 병원행

현장에 남게 된 것은 버려지고 상처 입은 개들이었다. 몸 곳곳에는 상처가 아문 흔적이 남아 있었고 일부 개체는 다리털이 빠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빨이 뿌리째로 뽑혀 피를 머금고 있는 개까지 발견됐다. 투견장 인근 풀숲에서는 가드레일에 목줄이 매인 개가 활동가들을 향해 연신 꼬리를 흔들기도 했다.

지난 4월 11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한 야산 공터 인근에서 발견된 투견 도박 피해견. 가드레일에 목줄이 묶였음에도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을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는 현장에 남겨진 개들을 구조해 곧바로 동물병원으로 이송했다. 몇몇 개체는 전신에 교상을 입고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빈혈 가능성이 확인되기도 했다. 물린 상처로 인한 감염 우려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항생제 치료와 흉부·입·다리 부위 상처 치료가 함께 진행됐다.

손예령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 활동가는 지난 4일 “병원으로 이송된 구조견을 검사한 결과 큰 이상은 없고 생체 징후는 안정적이었다. 다만 발견된 직후에는 전반적으로 기력이 많이 떨어져 처진 모습을 보였다”며 “현재는 동물자유연대에서 보호 중”이라고 설명했다.

제보를 통해 사건을 추적해 온 동물자유연대는 확인된 차량 수와 참가 인원 등을 종합하면 상당한 규모의 투견 도박판이 열린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투견 도박 현장에서 수천만원대 판돈이 오가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 역시 비슷한 규모거나 그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단체의 설명이다.

가해자 처벌 문턱 높지만…구조견 후유증은 12년째



문제는 불법 투견 도박 사건이 곧장 처벌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용된 개들은 오랜 기간 후유증을 앓는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투견 도박 사건은 동물보호법 위반 또는 도박 등 혐의로 처벌되는데 형량이 높게 나오지는 않다. 실제로 수천만원대의 판돈을 걸고 투견 도박을 벌인 30대 남성에 대해서는 2022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 남성은 6000만원~1억원을 걸고 도박판을 열었는데 투견들은 머리와 몸통에서 피가 날 때까지 상대를 물어뜯으며 경기에 이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월 11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한 야산 공터 인근 투견장에서 구조된 개체가 앞다리에 교상을 입은 모습. (사진=동물자유연대 제공)
반면 투견에 이용된 개들은 구조 후에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새 가족을 만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2015년 투견 도박판에서 구조된 ‘온유’(14)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온유는 온몸에 물리고 뜯긴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다. 처음 진료를 맡은 수의사는 “차에 밟힌 것 같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고 진단할 정도였다. 구조 후 동물자유연대 보호소에 입소한 온유는 흙장난으로 스트레스 푸는 법을 터득하는 등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에게 먼저 다가와 애정을 표현할 때도 많다고 한다.

지난 3월 온유가 동물자유연대 보호소에서 흙냄새를 맡는 모습. 오른쪽 앞다리와 옆구리에는 털이 빠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제공)
올해로 투견장 밖을 나온 지 12년째지만 온유의 상흔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동물과 접촉하는 과정에서는 세심한 관리도 필요하다. 투견으로 길러지며 형성된 행동 특성 탓에 공격적 성향을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손 활동가는 “투견이라는 인식 때문에 다른 개들보다는 입양 가기가 힘든 건 사실”이라면서도 “투견에 이용됐다고 해서 사람에게 공격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사람에게 친화적인 경우가 많고 다른 동물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대구 투견장에서도 활동가들을 보자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개가 있었다. 투견에 이용된 개들도 결국 사람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동물”이라고 덧붙였다.

투견도박 운영진, 일부 견주 입건…3만명 이상 탄원

이번 사건과 관련해 투견장 운영진과 견주 등은 동물보호법 위반, 도박 등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벗어나려던 수십명을 붙잡아 신원 확인했으며 이들이 도박에 참여한 정도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불송치를 생각해 놓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처분 결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동물자유연대는 사건 주동자와 가담자를 처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최근 경찰에 제출했다. 3만 2429명이 서명한 탄원서에는 “이번 사건은 범죄 은폐 시도이자 생명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생명 경시 태도”라며 “명백한 물적 증거와 범죄 규모를 참작해 주동자와 가담자 전원에게 합당한 법적 책임을 지워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손 활동가는 “투견 도박은 적발되더라도 처벌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또 동물보호법상 형량이 약하다 보니 그간 동물을 이용한 도박 행위가 제대로 처벌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투견 도박 행태를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근절될 수 있도록 앞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