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법 위반에 재판 거래 의혹까지’…잘나가던 대법관 출신 권순일의 몰락
by이연호 기자
2021.10.07 21:20:56
판사 최고 영예 대법관에 선관위원장까지 역임한 법조계 원로 위신 추락
변호사 등록 없이 화천대유서 고액 고문료 받으며 근무…변호사법 위반 확실시
'재판 거래 의혹'에 50억 원 로비 명단 포함되기까지
"文정권부터 성향 바뀌어"…"법조계 전체 불신 초래…사과부터 해야"
[이데일리 이연호 하상렬 기자] 판사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법관의 자리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권순일(59·사법연수원 14기) 전 대법관의 위신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온 나라를 뒤흔드는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휘말리면서다. 법조계에서는 권 전 대법관의 부적절한 처신이 본인뿐만 아니라 사법부 전체의 불신을 야기한 만큼 권 전 대법관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권 전 대법관은 전날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화천대유자산관리의 로비 명단인 이른바 ‘50억 원 약속그룹(50억 원 클럽)’에 6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권 전 대법관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이런 식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저에 대한 의혹은 곧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권 전 대법관은 이미 화천대유와 관련해 여러 의혹들에 휘말려 온 상황이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해 9월 대법관 퇴임 후 같은 해 11월부터 화천대유 고문을 맡아 최근까지 월 1500만 원의 고액 고문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우리는 영전 직전 부장판사 때 월 700만~800만 원 정도를 받았다. 그때 아마 우리가 가장 많은 일을 했을 것”이라며 “우리가 부장판사 때 일하던 것보다 화천대유에서 2배로 일했는지 궁금하다”고 비꼬았다.
단순히 고액 고문료가 문제가 아니었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해 대법관에서 퇴임한 이후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채 화천대유에서 법률 자문을 제공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권 전 대법관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 위반은 확실시하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달 보수 성향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등은 권 전 대법관을 사후 수뢰 및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고, 현재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유경필)에서 수사 중이다.
권 전 대법관에 대한 의혹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권 전 대법관은 소위 ‘재판 거래’ 의혹의 당사자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0일 공개한 대법원 출입 기록 자료에 따르면, 권 전 대법관은 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을 전후해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를 8차례에 걸쳐 만났다. 기록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6월 15일 이 지사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로 회부되고 난 다음 날인 6월 16일 권 전 대법관을 방문했다. 방문 이틀 뒤인 지난해 6월 18일 대법관들은 전합 첫 심리를 열었고, 주심 대법관은 아니었지만 권 전 대법관은 이 지사에 대해 무죄 취지의 법리를 주장했다. 결국 권 전 대법관의 별개 의견이 다수 의견이 돼 전합 판결문에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권에 맞게 성향을 바꾼 탓인지 권 전 대법관은 지난 2017년 12월 대법관이 겸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자리까지 꿰찼다. 지난해 대법관 임기가 끝났음에도 관례를 무시하고 위원장을 계속 하려다가 빈축을 사고 결국 물러나기도 했다. 변호사단체 회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권 전 대법관은 보수 성향의 전형적인 법조 엘리트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색채가 조금 바뀐 게 보였다”며 “노동 분야나 소수자 등과 관련해 진보적 판결을 한다든지 하는 사례가 발견됐는데 그런 이유로 다들 ‘대법원장 노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큰 어른 격인 권 전 대법관의 진심 어린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불미스러운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잘못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법관에 선관위원장까지 지낸 분이 이러저러한 의혹에 휘말린 것 자체가 일반 시민들에겐 법적 불신을 야기하는 행위”라며 “본인뿐만 아니라 법조계 전체에 불신을 주는 행위로 혼자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도 “해명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최고위 공직에 있던 사람은 그만큼 국가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없다”며 “김 씨와 부적절한 만남을 갖고 퇴임 후 변호사 등록 없이 고문 역할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것이 대법관 지낸 사람으로서 적절한 처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