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지난주 스위스에선 무슨 일이..양자암호통신 국제표준화 복마전
by김현아 기자
2019.07.02 17:38:01
SK텔레콤 “국내 의견수렴 부족..방해 아닌 반대”
한국 연구반장(KT) “SKT 반대에 ITU 본부도 화나”
한국이 양자암호통신 국제표준 주도할 수 있을까
국회 포럼과 정부의 중재 필요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6월 17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양자암호통신기술의 국제 표준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SK텔레콤이 한국이 주도한 양자암호통신 기술 표준화에 막판까지 반대입장을 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SK텔레콤은 제네바 현지에서 한국이 주도한 기술의 국제표준화를 방해한 게 아니라△국제전기통신연합 전기통신표준화부문(ITU-T)의 스터디 그룹인 SG-13(네트워크 아키텍처 분야)과 SG-17(암호기술 분야)간 연구 기술의 상호운용성 문제와 △한국에서 국가표준으로 제안될 기술에 대한 의견수렴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나, 해당 회의(SG-13)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국제표준화 과정이라는 것이 자사 개발 기술을 더 많이 국제표준에 반영하려는 복마전이라지만, 유럽표준화단체 등까지 끌어들여 국제회의 석상에서 한국이 주도한 기술에 반대 의견을 제기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종민 SK텔레콤 테크그룹장은 “해당 기술이 국가표준으로 제안되려면 국내 기업들에 공람이나 의견수렴 절차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생략된 채 국제표준으로 기고됐다”며 “여기에 이번에 예비표준으로 승인된 암호통신 네트워크 프레임워크 권고안 1건은 일본 표준단체(NICT)도 함께 하면서 일본 기업 NEC의 지적재산권(IP) 문제도 있었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국제 표준에 반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국가표준으로 제시한 기술의 국제표준화를 방해한 게 아니라 우리가 느낀 문제점을 밝히고 우리 기술이 표준에 수용되자(최종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SG-13 국내 연구반 반장이자, 국가표준 대표단 수석대표인 김형수 KT 융합기술원 기술전략팀장은 “이번 논란은 KT와 무관하다”고 전제한 뒤 “국가 표준 제안이 급하게 이뤄지면서 한국ITU 메일 시스템 장애는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표준으로 제안할 문서를 사무국인 TTA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에게 메일을 돌려 달라고 했는데, 메일 송수신에 장애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 NEC는 IP를 포기하기로 했고 NICT를 도운 것도 아니다. 정부의 훈령을 받아 국가대표단의 수석대표로 참여했을 뿐”이라면서 “ITU 외부 세력인 유럽표준화단체를 끌어들인 SK텔레콤에 현장에 있던 한국인들뿐 아니라 ITU 본부도 화가 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이 언급한 NEC의 IP포기는 권리 포기가 아니라 특허에 대한 라이선스를 주는데 차별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양자암호통신의 국제표준화는 막 시작된 단계이지만, 글로벌 양자정보통신 시장 전망은 밝다.
마켓 리서치 미디어(Market Research Media)에 따르면 국내 양자정보통신 시장은 2025년 약 1조 4000억 원, 글로벌 시장 규모는 약 26조 9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학계와 업계에선 우리나라가 양자암호통신 국제표준을 주도해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감정 다툼을 보면, 집안싸움으로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까 우려된다. SG-13과 SG-17에 참여한 교수들의 입장도 갈리기 때문이다.
SG-13에서 활동하는 한 교수는 “기술적 우월감에서 나왔다지만 SK텔레콤의 행태는 용납하기 어렵다”고 했고, SG-17에 참여하는 교수는 “SG-13이 너무 서둘러 국가표준을 국제 표준으로 제안했다”며, 에둘러 국내 연구반장을 맡고 있는 KT를 겨냥했다.
국회 주도로 만들어진 ‘양자정보통신포럼’에서 국내 기업 간 표준화 갈등을 없애는 노력을 하거나, 정부의 조정 노력이 절실하다는 얘기가 업계와 학계 안팎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