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혁신의 신동빈, 사장단 회의도 '언택트'로…변화하는 롯데

by함지현 기자
2020.07.14 16:36:12

하반기 VCM, 서울 내 3개 거점에서 '웨비나' 형태로
실적 부진 등으로 숙연한 분위기 속 진행
신 회장 '위드 코로나' 진단…본업 경쟁력 강화·혁신 당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4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0 하반기 VCM’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롯데그룹 창사 이래 처음으로 웨비나 형태로 진행됐다.(사진=롯데지주)
[이데일리 함지현 기자]“회의가 끝나더라도 함께 모여서 식사 같은 것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롯데그룹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이 열린 14일. 사상 첫 ‘웨비나’(Webinar·웹 세미나) 회의를 진행하던 사회자는 회의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이처럼 당부했다. 코로나19로 1년에 단 두 차례 진행하는 회의마저 ‘언택트’(비대면)로 진행하게 된 취지를 무색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롯데지주 대표이사와 4개 BU장, 계열사 대표이사, 주요 임원 등 90여 명의 참석자는 이날 서울 잠실과 소공동, 양평동 등 주요 거점 3곳에 마련된 8개 회의실에 소그룹으로 나눠 앉았다.

사전 발열 체크를 마친 뒤 마스크를 쓰고 입장한 이들은 다소 낯선 화상 카메라 앞에서 실적발표와 하반기 전망, 외부 초빙 강연 등에 집중했다. 사전 리허설을 충분히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만큼 회의 자체는 매끄럽게 진행됐다.

다만 분위기는 숙연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롯데그룹 계열사 실적이 전반적으로 좋지 못하다는 보고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보통 5일씩 진행하던 VCM을 3시간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평소라면 한두 번쯤은 새어 나왔을법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각오를 다지는 분위기였다.

회의에 참석한 롯데 고위 관계자는 “회의가 상당히 조용히 진행됐다”며 “직접 얼굴을 맞대야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 선을 읽을 수 없어 더욱 조심하게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롯데 인재개발원이 발간한 비대면 강의 매뉴얼인 ‘효과적인 화상(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위한 퍼실리테이션 가이드’.(사진=롯데지주)
사상 첫 웨비나 회의는 근무 형태의 혁신이라는 신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그는 코로나19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지난 3~4월 일본과 한국에서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를 병행했었다. 당시 비대면 회의나 보고가 생각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이었다고 호평했다. 또한 직접 방문이 어려운 사업장의 경우 오히려 화상회의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더 자주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도 했다.

신 회장은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근무 혁신’을 주문했다. 코로나19 이후 근무 환경이 변하게 된 만큼 그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 자리에서도 그는 “1~2년에 한 번씩 방문해왔던 해외 자회사의 업무 현황을 이제는 언제라도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최근 화상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탓에 그간 상대적으로 자주 방문하지 못했던 사업장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챙길 수 있게 됐다는 긍정 평가인 셈이다.

롯데 주요 계열사들도 이 같은 주문에 발을 맞춰나가고 있다. 롯데지주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인 롯데쇼핑, 롯데홈쇼핑, 호텔롯데 등은 주 1일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신 회장 자신도 주 1회 재택근무를 실시하며 비대면으로 업무를 챙기고 있다.

롯데쇼핑은 도심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대신 원격 근무나 주거지 인근에 마련된 IT 사무실에서 일하는 ‘스마트 오피스’를 도입했다. 롯데온(ON)을 진행 중인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본부는 직원 전원이 직책 대신 영어 이름 호칭을 사용한다. 롯데 인재개발원은 화상 강의 매뉴얼을 책자로 발행해 계열사뿐 아니라 타 기업 인재개발원, 대학교·교육기관 등에 배포한다.

특히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유통 공룡’의 최 정점에 있는 신 회장까지 주도적으로 나서 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웹 회의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향후 그룹의 혁신 속도는 더욱 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4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웨비나(Webinar) 형태로 열린 ‘2020 하반기 VCM’에 참석한 모습.(사진=롯데지주)
신 회장은 회의 막바지에 직접 나서 ‘애프터 코로나’(After Corona·코로나 이후)보다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내년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에 따른 해법으로는 본업의 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그는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리먼 쇼크는 1~2년 잘 견디면 회복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른 만큼 그간의 사업전략을 돌아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제무역·세계화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새로운 사업이나 신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사업의 경쟁력을 재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신 회장은 “작년 대비 70~80% 수준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70% 경제’가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업무상의 낭비를 줄이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CEO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너무 위축되지 말라”면서 “단기 실적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본업의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