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개도국, '국가 버팀목'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

by방성훈 기자
2024.11.26 17:36:18

9개 개도국 중 6곳서 중산층 성장 정체 또는 감소
인니, 중산층 비중 팬데믹 이전 22%→현재 17% 뚝
"인구 증가에도 비공식 고용 증가…근로소득은 줄어"
중국, 인구 감소보다 먼저 중산층 감소 시작
태국, 높은 가계부채로 중산층 사다리 가로 막혀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아시아 중산층의 성장세가 예전과 같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25일(현지시간) “1991~2014년 아시아의 중산층 가구 수는 연평균 6%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지난 10년 동안에는 2%로 둔화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매체는 “여전히 중산층이 늘고 있는 인도를 제외하면 중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서 중산층 성장세가 축소했다”며 “아시아 개발도상국 전체 인구의 72%에 해당하는 27억 중산층의 미래가 위태롭다”고 지적했다.

(사진=AFP)


중산층 성장 속도는 한 나라의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빈곤이 줄어든다거나, 글로벌 대기업의 이익 측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이 늘어나면 개인의 권리가 확대하고, 더욱 책임 있는 국가로 이어질 수 있다. 즉 개발도상국, 나아가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코노미스트는 중산층 증가가 아동에 대한 노동 착취와 관련해 규제를 촉진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짚었다. 기술 발전으로 숙련 노동자들의 수익이 늘고, 이를 본 중산층 부모는 자녀를 공장에 보내는 대신 교육을 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산층이 두터운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부연했다.

중산층에 대한 정의는 국가나 학자에 따라 다양하지만, 상당수가 소득을 기준으로 범위 등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코노미스트는 중산층을 연간 가처분 소득이 3000달러에서 2만 5000달러 사이인 가구로 규정하고, 계열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데이터를 사용해 아시아 중산층을 추적하는 척도를 만들었다. 인플레이션을 조정하고 환율은 고정했으며, 한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부유한 경제권과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캄보디아, 미얀마, 네팔 등 데이터가 부족한 지역은 제외했다.

그 결과 37억명이 중산층으로 분류됐으며, 이는 아시아 전체 인구의 약 80%에 달했다.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1990년대와 2000년대 매년 평균 1900만가구가 중산층에 합류했고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속도가 둔화했고, 2021년부터는 중산층에 합류하는 가구 수가 연간 1200만가구로 줄었다.



하지만 이는 중산층 성장세가 빠른 인도가 포함된 수치로 인도를 제외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산층에 합류하는 가구 수는 연간 170만가구로 급감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중산층에서 밀려나는 가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인도처럼 인구가 증가한다고 중산층이 무조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중산층 비중이 팬데믹 이전 22%에서 현재는 17%로 축소했다. 인도네시아의 통계학자 아말리아 아디닝가르는 지난 8월 의회에 출석해 “2021~2024년 600만명이 ‘희망 중산층’(aspiring)으로 전락했다”며 우려를 표했다. 희망 중산층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빈곤에서 벗어났음을 뜻하는 완곡한 표현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중산층은 인구보다 먼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그 변화도 더 급격했다”며 “조사 대상 9개국 가운데 6개국에서 중산층 가구 비중 확대가 멈췄으며, 4개국에서는 심지어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를 제외하고 아시아 중산층의 성장세는 곧 아예 멈출 수 있다”고 예측했다.

아시아 개도국에서 중산층 증가세가 둔화한 주요 원인으로는 고용의 불투명성 및 높은 가계부채가 꼽혔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비공식 고용이 늘었고, 이 때문에 소득이 줄어 중산층으로 올라서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위기 이후 근로자의 평균 수입이 32% 감소했다. 인도네시아의 비공식 고용은 2020년 이후 5%포인트 상승해 전체 근로자의 61%에 달했다. 태국의 경우 높은 가계부채가 중산층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로 수혜를 입은 베트남은 지난 10년 간 연평균 3%의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1990~2014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 교육을 받은 숙련 노동자가 부족해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팬데믹과 기후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역시 중산층을 옥죄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중산층의 침체가 개혁에 대한 더 많은 요구로 이어질지, 아니면 자유주의 정치의 해체로 이어질지 섣불리 판단하기엔 이르다”며 “현재 아시아 개도국들의 상황을 보면 정치 부패나 물가 상승 등에 대한 중산층의 불만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