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에 백기 든 화웨이 '아너' 브랜드 매각…삼성전자 반사이익 기대

by신정은 기자
2020.11.17 15:55:39

화웨이 "경영관리·의사결정에도 참여 안해"
인수자 즈신, 1대 주주는 中정부 산하 기업
중저가 브랜드 '아너' 6년간 판매량 7천만대
화웨이 세계 2위 자리도 위태…삼성 반사이익
스마트폰 시장 '1강 3중'…2위 경쟁 치열

중국 선전에 위치한 화웨이 플래그십스토어. 사진=신정은 특파원
[베이징=이데일리 신정은 특파원 장영은 기자]중국 화웨이(華爲)가 미국의 전방위 제재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인 아너(Honor·룽야오·榮耀) 사업을 매각한다. 삼성전자의 뒤를 바짝 추격하던 화웨이가 한발 뒤로 밀려나면서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삼성전자(005930)의 1위 자리는 더욱 공고해지는 한편 2등 자리를 놓고 화웨이, 애플, 샤오미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17일 중국 관찰자망 등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날 오전 성명을 내고 아너 부문을 분할해 선전시 즈신(智信)신정보기술유한공사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매각 후 아너 지분을 조금도 보유하지 않게 되며 경영관리와 의사결정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업 전체를 통째로 넘긴다는 얘기다.

화웨이는 이번 매각이 미국의 제재 속에서 아너 브랜드를 존속시키고 공급상과 판매상들을 살리기 위해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로) 산업 기술 요소를 계속 획득하기 어렵게 돼 소비자 부문 사업이 거대한 압력을 받는 고난의 시기에 아너 채널과 공급상들이 계속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체 아너 사업 부문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아너 브랜드는 젊은 층을 겨냥해 화웨이가 2013년에 만든 중저가 브랜드다. 지난 6년동안 팔린 아너 브랜드 스마트폰은 7000만대에 달한다.

아너를 인수하는 즈신신정보기술도 이날 성명을 내고 화웨이와 인수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회사는 30여곳의 아너 판매상들이 주도로 설립한 회사다. 올해 9월 27일 설립됐으며 등록 자본금은 1억위안(약 169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 금융계망에 따르면 이 회사의 1대 주주는 선전시인민정부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산하에 있는 국영기업인 선전시스마트도시과학기술발전그룹이다. 지분 98.6%를 갖고 있다. 또한 인수를 앞둔 지난 13일 선전시스마트도시과학기술발전그룹은 등록 자본을 2억위안에서 32억위안으로 늘렸다. 결국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살리기 위해 자금을 투입해 자구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 아너 브랜드를 인수한 선전시 즈신(智信)신정보기술 유한공사 지분 구조. 사진=아이치차
화웨이가 이번 브랜드 매각을 결정한 건 미국의 반도체 제재를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최대 2년치 재고를 비축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근본적 대처 방안은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9월 15일 전세계 기업이 반도체를 비롯해 미국 기술을 조금이라도 활용한 제품이나 부품, 소재 등을 화웨이나 그 자회사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국 상무부의 특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로 인해 이동통신 기지국,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 다양한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화웨이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 중 아너 제품의 비중은 25%에 달한다. 화웨이 스마트폰 사업에서 아너가 빠지고 나면 삼성전자와의 1위 경쟁은 물론, 2위 자리를 지키는 것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판매량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그동안 프리미엄 제품군은 ‘메이트’와 ‘P’ 시리즈가, 중저가 보급형은 아너 브랜드가 담당해 왔는데 제품군 하단이 비게 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인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9.2%(2억9620만대)이었다. 2위인 화웨이는 15.6%(2억4062만대), 3위인 애플은 12.5%(1억9348만대)다.

지난해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본다면, 아너가 빠진 화웨이의 판매량은 1억9000만대를 밑돌며 애플보다 점유율이 낮아진다. 여기에 미국의 제재로 구글모바일서비스(GMS)를 탑재하지 못하게 된데다 반도체 공급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어서 프리미엄폰 판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기자)
화웨이의 프리미엄과 보급형 폰의 빈자리를 삼성과 애플, 샤오미와 오포 등의 경쟁사가 빠르게 채워갈 것을 감안하면 3위 자리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과 보급형에서 모두 화웨이 반사이익을 누리며 1위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할 것으로 보이며 2~5위권에서는 비슷한 점유율을 보이며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은 물론 폴더블폰, 중저가 보급형까지 탄탄한 라인업을 가진 유일한 업체가 됐다. 3분기에는 주요 시장이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면서 락다운(봉쇄조치) 등으로 지연됐던 스마트폰 수요가 반영되면서 전년동기대비로도 스마트폰 판매량이 증가했다. 화웨이 수혜까지 더해질 경우 판매량과 점유율 모두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화웨이에서 분리되면서 아너 브랜드의 가치는 점차 하락할 것”이라며 “아너 브랜드의 유럽 판매량은 1000만대 규모로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에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2위부터는 업체별 강점을 내세워 접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애플은 각종 결함 논란에도 불구하고 견조한 수요를 보이고 있는 ‘아이폰12’를 중심으로 가격을 낮춘 ‘아이폰11’과 ‘아이폰SE’ 등의 판매도 여전히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 처음으로 애플을 제치고 세계 3위(점유율 기준)에 올라선 샤오미와 또 다른 중국 제조사인 오포 역시 ‘가성비’(가격대비 성능비)와 화웨이 반사이익을 노리고 적극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