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맏형 현대차 임단협, 미래車 시대 앞두고 고용문제로 치열한 샅바싸움
by이소현 기자
2020.08.25 18:12:00
코로나19로 경영환경 악화 속에 현대차 임단협 주목
국내 최대 규모 노조로 '투쟁 기상도' 엿볼 바로미터
임금인상 외쳤지만, 요구안 들여다보면 '고용'에 방점
입단협 키워드 '생존·미래'..'짧고 굵게' 협상에 속도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현대자동차(005380)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은 사상 처음으로 ‘언택트(비대면)’ 화상회의 방식으로 열린다. 매년 교섭 때마다 60여명 교섭위원이 울산공장 회의 공간에 모여 협상을 진행했지만, 올해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없을 전망이다. 노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분위기에 따라 25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오는 27일 열리는 4차 교섭부터 3개 거점으로 분산해 서로 화상으로 연결해 교섭한다.
노사 교섭을 분산해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1987년 현대차 노조가 설립된 이후 역사상 처음이다. 코로나19는 30여 년간 고수했던 노사의 임단협 교섭 방식도 뒤집을 만큼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 현대자동차 노사 교섭 대표가 13일 울산공장 본관에서 올해 임금협상 상견례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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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는 국내 최대 규모의 노조로 한국의 강성노조를 대표한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 속에서 추석 전 타결을 목표로 돌입한 임단협에 현대차만이 아니라 기아차,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넘어 대한민국 노동계가 들썩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대한민국 기업 노조의 ‘투쟁 기상도’를 확인할 바로미터 격이기 때문이다.
앞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로 관련업계는 노조가 회사에 임단협을 위임(한국타이어)하거나, 임금을 동결(쌍용차·만도)하는 결단을 내렸다. 모두가 상생하자는 분위기 속에 나 홀로 임금인상만을 외치기에는 현대차 노조도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그동안 현대차 노조는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으로 임금인상을 관철시켜 ‘안티현대’를 낳고, ‘귀족노조’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올 초 출범한 ‘실리주의’ 새 노조 집행부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직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홍보에 나서고, “까다로운 고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품질개선에 앞장서자”며 이전과 달라진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코로나19는 현대차 노사의 교섭 방식뿐만 아니라 임단협에도 중요한 변수가 됐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도 기본급 12만304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2019년 당기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등 당장 현실에 필요한 ‘임금인상’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여론에 노조는 내부 소식지를 통해 “현대차 노조의 선도 투쟁으로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 인상이 가능하고 이는 국가 경제 활력과 국민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뤄졌다”며 대의명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단협 요구안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용문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올해 현대차 노조의 단체교섭 키워드는 ‘생존’과 ‘미래’다. 고령화와 미래 자동차 시대로의 전환은 현대차 노조에 변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원의 평균 연령은 47세, 근속 연수는 21년에 달한다. 노조의 주력층은 베이비붐세대로 2025년까지 은퇴자만 1만5800명에 달한다. 전 조합원의 30% 이상이 앞으로 5년 안에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얘기다.
전동화 모델의 생산 확대는 고용에 대한 위기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는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는 부품이 30~50% 가량 적어 그만큼 조립 인력이 덜 필요하다. 지난해 노사가 공동으로 구성한 고용안정위원회 산하 외부 자문위원들은 자동차 생산 기술의 변화로 2025년까지 제조 인력의 20% 가량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생산 증가에 맞춰 독일 다임러가 2022년까지 1만명, 폭스바겐이 2023년까지 8000명, 아우디는 2025년까지 9500명 감원을 예고했다. 현대차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에 앞서 지난 4월 소식지를 통해 코로나19에 따른 업계의 위기 의식을 반영해 ‘임금 동결’을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회사가 아무리 경영난을 겪어도 임금 인상 요구를 꺾지 않던 현대차 노조가 먼저 임금 동결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미래 고용에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고용 안정을 위해 이번 임단협에서 임금 인상을 협상 카드로 내세웠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 별도 요구안의 최우선 순위로 시니어촉탁직 공정배치와 근무기간 확대를 내세웠다. 정년퇴직을 앞둔 50대 조합원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안이다. 정년 퇴직자를 단기 고용해 활용하는 시니어촉탁직은 정해진 업무가 없다. 노조는 올해 요구안에서 촉탁계약직이 기존 근무지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니어촉탁직이 되면 연봉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정규직 1년 차 임금(약 3500만원)과 같아진다. 현대차 노조원의 연봉은 평균 8900만원이다. 국내 소득 상위 5% 수준이다. 또 노조는 작년 임단협을 통해 시니어촉탁직 근무 기간을 6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늘렸는데 이를 추가로 연장하는 것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장기적으로는 시니어촉탁직을 폐지하고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것으로 투쟁 방향을 설정했다. 회사 측은 “교섭을 통해 노조와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노조는 고용 보장을 위한 전기자동차 전용 공장 설립, 174만대 규모 국내공장 생산량 유지, 해외공장 추가 생산물량 국내 전환 등 일감사수에 중점을 둔 요구안을 내세웠다.
현대차 노사는 본교섭과 실무교섭을 동시에 진행하며 ‘짧고 굵은’ 교섭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셧다운’ 없이 가동하고 있는 국내공장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어 5만여 조합원의 노력에 대한 합당한 대우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 커 앞으로 경영 실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장담할 수 없으니 냉정하게 상황을 보자고 맞서고 있다. 노사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라는데 공감하며 추석 전 타결을 원하고 있는 만큼 2년 연속 무분규 타결로 귀결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