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떠난 듯"…·설리·구하라 사망에 2030 `깊은 우울`

by황현규 기자
2019.11.25 15:38:52

같은 시대 지내 오며 '가치관' 공유
"연예인 사망=내 친구 사망 동일화"
여성 대상 범죄 강력 처벌 목소리도
모방 피해 우려…"전문기관 협조 요청"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가수 설리(본명 최진리) 사망에 이어 그의 친구이자 가수인 구하라(29)씨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운데 소식을 접한 2030 청년들이 충격에 빠졌다. 둘과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청년들은 상실감과 죄책감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구씨가 전 남자친구와 데이트 폭력·불법 촬영물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라 여성 범죄 피해에 대한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젊은 세대는 구씨의 사망을 두고 `친구를 잃은 것 같다`고들 얘기한다. 9년 전 절친한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적이 있다는 김상현(27)씨는 구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 때가 떠올랐다고 한다. 김씨는 “중·고등학교 이후 대학교 때까지 TV에서 봐오던 연예인의 사망 소식을 접하니 내 옆에 지인이 세상을 떠난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구씨의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직접 조문을 할 예정이다.

설리 사망 이후 구씨에게 대중이 더 신경썼어야 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인 박모(25)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는 수많은 전조 증상이 나타나는데 구씨는 이전부터 같은 시도를 해왔다”며 “누리꾼이나 팬들이 설리 사망 이후 구씨에게 (악플이 아닌) 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했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 구씨는 지난 5월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안녕”이란 글을 남겼다 지운 후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2030세대들의 상실감에 대해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같은 시대를 지내온 세대들은 그들만의 가치관이나 생활 양식을 공유하면서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며 “친근한 연예인의 죽음이 친구의 죽음 정도로 크게 다가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 남자친구와 폭행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아이돌 그룹 카라 출신인 구하라(27)가 지난 9월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특히 젊은 여성들은 구씨가 여성 범죄 피해자였던 점을 들며 울분을 쏟아내기도 했다. 취업준비생 은모(28)씨는 “사생활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며 “오히려 여성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데이트 폭력 등에 사전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안쓰러웠다”고 했다.

실제 구씨는 전 남자친구 최모씨와 데이트 폭력 관련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다. 1심은 최씨의 협박·강요·상해·재물손괴 등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지만 불법촬영물과 관련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씨가 연인이던 피해자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폭행해 상해를 입혔고 성관계 동영상을 제보해 연예인 생명을 끊어놓겠다고 협박했다”면서도 “(촬영물에 대해서는) 명시적 동의는 받지 않았지만 피해자 의사에 반한 걸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

법률사무소 청년의 박인숙 변호사는 당시 판결을 평가하면서 “피해자 중심주의와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한 법원 판결이 필요했다”며 “구씨를 포함해 젊은 여성들이 느끼는 여성범죄 트라우마를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지난 24일 세상을 떠난 가수 구하라와 지난달 14일 앞서 세상을 등진 가수 겸 배우 설리. (사진=구하라 인스타그램)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상실감과 무기력감이 추가 피해로 이어지지 않기를 당부한다. 특히 매년 청년층의 우울증과 불안 장애가 적지 않은 만큼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6년~2018년 20대 진료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우울증·불안장애 등으로 진료 받은 20대는 50만명에 달한다. 증세가 있으면서도 진료받지 않은 잠재적 우울증 환자를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명인의 사망 이후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중앙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유명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이후 모방 시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누구나 어느 순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당사자 혹은 가족·친구들이 병원·상담 기관 등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