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예견된 불발”…자본시장이 보는 HMM 인수전
by김연지 기자
2024.02.07 17:53:53
견해차 못 좁히고 원점으로 돌아간 HMM 딜
산은 7일 자정께 입장문서 ''매각 결렬'' 선언
하림 "경영권 담보 없는 딜, 누가 받아들이냐"
자본시장 "예견된 결렬…재매각 쉽지 않을 것"
[이데일리 마켓in 김연지 기자] 반전은 없었다. ‘거래 특수성을 고려하면 (M&A 성사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말이 현실이 됐다. 이날 자정께 매각이 불발된 국내 유일의 국적 해운사 HMM(옛 현대상선)의 이야기다.
이번 협상 결렬에 따라 매각 측인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가 HMM 지분 57.9%를 그대로 보유하게 된 가운데 자본시장 안팎에선 해운업황이 불확실한데다 인수 조건 또한 까다로워 HMM이 이른 시일 내 새 주인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7일 산업은행은 입장문을 통해 HMM 매각 작업이 최종 결렬됐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이날 자정 “산은-해진공은 팬오션·JKL컨소시엄(하림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주식매매계약 및 주주간계약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다”며 “7주에 걸친 협상기간 동안 상호 신뢰 아래 성실하게 협상에 임했지만, 일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고 설명했다.
하림 측도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HMM의 안정적인 경영 여건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하며 성실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최종적으로 거래 협상이 무산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주지 않고 최대 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계를 지난해 7월로 돌릴 필요가 있다. 산은-해진공은 지난해 7월 HMM 매각 공고를 냈다. 지난 2016년 유동성 위기로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관리체제에 넘어간 HMM이 무려 8년 만에 새 주인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 6조4000억원의 인수가를 제시한 하림은 지난 12월 HMM 인수 거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매각 측과 본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벌여왔다. 협상의 핵심은 1조6800억원에 달하는 HMM의 잔여 영구채(Perprtual Bond·영구히 이자를 지급하는 회사채) 처리와 실질적인 경영권 담보 등이었다.
하림 컨소시엄은 협상 테이블에서 현금배당 제한과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 컨소시엄 내 재무적 투자자(FI)의 자금 회수 특성을 고려한 지분 매각 기한 예외 적용 등을 요구해왔다. 일부 견해 차이는 어느 정도 조율됐으나 FI의 지분 매각 기한 예외 적용 등의 조건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공익 성격이 짙은 기업을 인수한 뒤 비교적 단기에 차익을 실현하는 것에 대한 매각 측의 부정적인 인식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에선 하림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실질적인 인수 가능성에 의문을 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자금조달 능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닭 장사를 본업으로 하는 기업이 특수성을 지닌 해양 산업에 맞춰, 그것도 국가적 성향이 짙은 기업을 잘 경영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물음표가 특히 끊이지 않았다.
실제 해양수산부와 해진공은 협상 기간 동안 우려의 목소리를 내비쳐왔다. 대표적으로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말 영국에서 열린 33차 국제해상기구(IMO) 총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제 해운선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알고 있지 않느냐”며 “해운 산업 이해도가 높고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대안을 가진 기업이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안을 잘 아는 자본시장 한 관계자도 “인수 제안가만 놓고 보면 하림은 원매자 중 가장 앞선 곳이긴 했지만, 인수자의 재무적 안정성과 공익을 높게 감안해야 한다는 매각 측 목소리가 짙었다”며 “국가 해운산업의 미래가 달린 거래이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는 기존의 거래와는 성격이 아주 달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에선 산은-해진공이 재매각에 나서더라도 적합한 원매자 구하기에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산업적 성향이 짙은 HMM 거래의 특수성을 살리면서도 막대한 몸값을 치를 수 있는 곳이 유력 원매자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또 다른 관계자는 “공공성을 띠는 동시 만만치 않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원매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금 회수가 필수적인 FI에게도 부담스러운 딜(deal)이지만, 민간 기업도 새로 품은 자식을 온전히 내 자식이라 칭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