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무조건 없다고 좋은 게 아니다?[궁즉답]

by이명철 기자
2022.02.22 17:31:04

윤석열 "국채 늘면 신용도 저하" vs 이재명 "여력 충분해"
3년 전 홍남기 "채무비율 40%초반 유지"…근거 따진 文
지속적 확장재정에 재정준칙선 60%를 저지선으로 설정
적정 비율 규정 어려워…"이자율·환율 따라 여력 달라져"
문제는 증가속도…재정당국 "...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이재명·윤석열 대선 후보 간 재정 건전성과 지출 여력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윤 후보는 국가부채 비율이 높아지면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이 후보는 아직 선진국대비 낮은 수준인 만큼 재정 여력이 있다며 반박했다.

21일 마포구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앞서 대선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이번 정부 들어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나랏빚이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정 지출을 통한 경제의 선순환 기대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경제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적정 국가채무의 비율은 어느 정도가 될까.

양강 대선 주자인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지난 21일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국가부채의 수준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윤 후보는 이 후보에게 적정 국가부채비율을 물으며 “한 50~60% 넘어가면 비(非)기축통화인 경우 어렵다고 한다. 국채가 많이 발행되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외채차입 이자율이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후보는 “국민 가계부채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제일 높은데 국가부채 비율은 다른 나라가 110%, 우리나라는 50%가 안 된다”며 “(추가 국채 발행이) 충분히 여력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용어를 정리하자면 두 후보가 이야기한 국가부채는 국가채무로 부르는 게 적확하다. 국가채무는 상환 의무가 있는, 말 그대로 빚이다. 지난해 기준 965조3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7.3% 수준이다.

반면 연금충당부채 등 비확정 부채를 포함한 국가부채는 좀 더 확장적 개념이다. 2020년 기준 약 1985조원으로 당시 GDP(1933조원)를 이미 넘었다. 통상 국가채무 규모를 두고 나랏빚 부담을 논하고, 이·윤 후보 발언을 감안할 때 당시 논쟁의 대상은 ‘국가채무’인 것으로 해석된다.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선진국대비 낮다는 이 후보의 주장은 사실과 부합한다. 중앙·지방정부 채무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까지 포함해 국제 비교 수준으로 쓰이는 일반정부 부채(D2)의 비중은 2020년 48.9%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편이다. 스웨덴(52.7%), 체코(46.5%), 뉴질랜드(45.4%) 등이 우리와 비슷하다. 재정준칙이 깐깐한 독일도 78.8%고 미국은 133.9%로 한국의 3배 수준이다. 일본은 237.3%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해당 지표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에 활용됐다. 이 후보도 지난해 12월 선대위 현장에서 “국가부채비율이 100% 넘었다고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며 적극적인 확장 재정 기조를 시사했다.



다만 절대 국가채무 규모가 선진국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증가 속도는 빠르다. 한국 국가채무는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약 660조원에서 지난해까지 300조원 가량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올해는 1076조원으로 400조원 이상 급증하게 된다.

이에 빠른 국가채무 증가세를 우려하는 안팎의 시선도 많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해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피치는 한국의 적극 재정지출 기조가 중기적으로 신용등급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재정 여력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판단하고 있는 적정 국가채무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이번 정부 초기만 해도 국가채무 비율은 40%대를 마지노선으로 여겼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9년 5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 비율을 40% 초반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획재정부가 2020년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 시나리오별 국가채무 비율 추이. (이미지=기재부)


하지만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 발언을 두고 40%를 유지하겠다는 근거가 무엇이냐며 명확한 인식 차를 나타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적어도 내년까지는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결국 올해 국가채무 비율(50.1%)은 50%를 넘기게 됐다.

확장적 재정 정책을 지속하는 정부가 새로 세운 기준은 국가채무 비율 60%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비율 60%와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3%를 상호 보완적으로 유지하는 산식으로 짜였다.

2020년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도 경제 체질을 개선해 성장률 하락폭을 둔화시킬 경우 40년 후인 2060년에도 국가채무 비율이 64.5%에 그칠 것으로 제시했다.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60%대 국가채무 비율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빠른 국가채무 증가세는 조절해야 한다는 게 재정당국 판단이다. 홍 부총리는 추가경정예산(추경)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8일 국회에서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재정준칙이 말로만 이뤄지고 입법되지 않는 것과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속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재정당국이 (재정건전성) 노력을 병행하는 점에 대해 (좋게) 평가를 해줬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한계에 와 있지 않나 싶다”고 우려했다.

애초에 적정한 국가채무 비율이란 전제가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채 이자율과 대외신인도, 경제 성장률 등이 얽힌 상태에서 감당 가능한 채무 수준이 다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조세정책연구원장을 지낸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그동안 세계 많은 석학들이 국가채무 비율이 증가할 때 나타나는 경제 역효과 등을 분석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할 만큼 적정 비율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과거에 비해 이자율이 크게 낮아져 국가채무가 늘어나도 오히려 이자 금액은 줄거나 외환시장 안정성 등으로 추가 여력이 생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