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네타냐후 ICC 체포영장 집행 안해”…돌연 입장 선회
by방성훈 기자
2024.11.28 15:48:14
푸틴 체포 안한 몽골 비난하더니…돌연 네타냐후 지지
"이, ICC 회원국 아냐…영장 집행 vs 국제법 양립 불가"
국제사회는 물론 프랑스 내부서도 비판 목소리 봇물
"이스라엘-레바논 휴전안에 프랑스 이름 올리려 굴복"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프랑스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국에 입국하더라도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네타냐후 총리를 겨냥한 ICC의 체포영장 발부·집행에 적극 찬성했던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진=AFP) |
|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가디언 등에 따르면 프랑스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ICC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의 면책과 관련해 국제법상 의무와 양립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강요받을 수 없다”면서 “이러한 면책은 네타냐후 총리와 기타 관련 장관에게 적용되며, ICC가 체포 및 인도를 요청할 경우엔 (면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ICC 설립의 법적 근거인 로마 규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는 ICC가 발부한 체포영장에 ‘면책권’을 가지게 된다는 얘기다. 성명은 프랑스와 미국이 제안한 레바논과의 휴전 중재안을 네타냐후 내각이 받아들인지 하루만에 나왔다.
주목할만 점은 ICC가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드 전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을 때 프랑스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체포영장 발부가 부당하다며 반발한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서방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프랑스 정부 관리들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및 레바논에서 시행한 군사작전을 강력 비판해 왔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9월 몽골을 방문했을 때 몽골이 그를 체포하지 않자 ICC는 회원국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는데, 이 때에도 프랑스 외무부는 몽골을 비판하고 “면책권을 없애기 위한 (프랑스의) 오랜 헌신에 따라 ICC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러시아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로마 규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프랑스 외무부는 입장을 뒤집은 근거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외신들은 로마 규정 제 98조를 근거로 삼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 98조엔 ‘ICC는 국제법상 의무와 상충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체포를 요청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FT는 이번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의 휴전에 프랑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분석했다. 휴전 논의를 위한 다자간 회담에서 ICC의 체포 영장은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프랑스 현지언론에 따르면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이 회담에서 “프랑스는 항상 국제법을 준수할 것”이라며 ICC의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네타냐후 총리가 이에 크게 분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영장 집행에 나서지 말라고 촉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ICC 및 체포영장과 관련해 “반유대주의적”, “편견적이고 차별적인 정치 기구”라고 공개 비난하기도 했다.
ICC는 총 124개국을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이들 국가는 ICC의 체포영장 발부에 따라 네타냐후 총리 또는 갈란트 장관이 자국 영토에 입국하면 체포할 ‘의무’가 있다.
이스라엘이 로마 규정에 서명하지 않았음에도 ICC가 네타냐후 총리 및 갈란트 장관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있었던 것은 2021년 판결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시 ICC는 팔레스타인이 회원국이기 때문에 요르단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선 ICC가 관할권을 가진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로마 규정에 따르면 ICC는 ‘국내법이나 국제법에 따라 면책권이나 특별 절차 규칙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모든 국가 원수 또는 정부 수반에 대한 관할권을 갖는다. 또 규정 제 27조에선 고위직 면책을 두고 ‘법원이 그러한 인물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선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프랑스의 결정에 대해 국제사회는 물론 내부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프랑스 녹색당의 마린 통델리에 대표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멋진 뒷걸음질”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휴전 중재안 발표시 프랑스가 언급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멋대로) 합의한 거래 결과”라고 주장하며 “프랑스는 네타냐후 총리의 요구에 굴복했으며, 국제적 정의보다 그를 선택했다. 심각한 역사적 실수”라고 비난했다.
실제 이스라엘은 이날 프랑스 외무부의 성명 발표에 발맞춰 ICC를 상대로 네타냐후 총리 및 갈란트 장관의 전쟁범죄 혐의에 대해 항소하고,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영장 집행을 정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프랑스 ICC 지지를 철회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가디언은 프랑스가 근거로 삼은 제 98조에 대해 ICC는 2019년 이 조항에 대해 면책권의 근거가 아닌 영장 집행 요청 방식을 안내하는 ‘절차적 규칙’이라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꼬집었다. 영국의 데이비드 라미 외무부 장관과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등도 ICC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