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기물 금리 역전…기재부, 30년물 발행 더 늘릴까
by이윤화 기자
2021.03.23 18:23:38
초장기물 강세 여전 10년물·30년물 금리 역전 이어져
기재부 30년물 발행 증가 및 구두 개입도 일시적 영향
시장 "본드포워드 등 장투 수요 있어 공급으론 역부족"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국고채 초장기 구간의 금리 역전이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 단기물 시장도 불안정해지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최근 국고채 30년물 등 초장기물 시장은 이례적인 강세를 나타냈다. 반면 5년 이하 단기물은 약세를 보여 금리가 급등하면서 장단기 금리가 축소되는 커브 플래트닝(Curve Flattening)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보통 채권 시장에서는 만기일이 길수록 금리가 더 높은 것이 정상적이나 지난 18일부터 국채 10년물과 30년물의 일드 커브(수익률 곡선, Yield Curve)는 역전됐다. 이에 국채를 발행하는 기획재정부에선 국채 만기를 조정하겠다고 밝히는 등 구두 개입에 나섰다. 4월 발행에선 보험사 등에서 수요가 급증하는 30년물 발행을 대폭 늘릴 가능성에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23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국채 20년물 금리는 연 2.072%로 30년물 금리(2.05%)보다 0.022%포인트 더 높은 상황이다. 10년물 금리는 기재부의 구두개입 영향과 미 국채 10년물 금리 1.6% 하향 안정에 연 2.032%로 30년물 보다 낮아졌다. 지난 18일~19일엔 10년물 금리가 각각 0.014% 포인트, 0.015%포인트 더 높은 금리 역전 현상을 보였다.
채권 시장에서는 초장기물 시장 강세에 대해 수요 측면에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사가 오는 2023년 새로운 보험계약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재무건전성을 확대하기 위해 30년물 등 초장기물에 대한 수요를 늘렸다는 해석이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는 자산보다 부채 듀레이션이 길다. 생명보험 등의 상품은 몇 십년 뒤에 해당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상환금, 즉 부채가 존재하는데 보험사 특성상 그 기간이 상대적으로 더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 뒤 IFRS17이 도입되면 부채와 자산의 평균 만기인 듀레이션을 일정 부분 맞춰야 하고 지급 여력(RBC) 수준도 키워야 한다.
실제로 최근 채권 시장에서는 5년 후 30년물을 인도하는 ‘본드 포워드’(Bond Forward)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 9월부터 RBC 산출시 본드 포워드를 반영하기로 결정 한 뒤 해당 거래가 증가 할 것이란 예상이 있어 왔다. 본드 포워드 거래란 쉽게 말해 일정 시점에서 채권을 정해진 가격으로 사고 그것을 일정 기간 뒤에 되파는 계약을 말한다. 증권사가 30년물 채권을 매입해 5년을 보유한 뒤 25년 만기가 남은 채권을 보험사에게 파는 식이다. 본드 포워드 거래 증가는 초장기물 매수, 금리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매수자인 보험사 입장에서는 당장 돈을 쓰지 않고도 30년물을 담아 올 수 있다. 보험사의 거래 상대방인 증권사나 은행의 입장에서는 일드 커브가 스티프닝(장단기 금리 차 확대) 될수록 수익을 남기기 좋은 구조가 형성된다. 증권사 입장에서 만약 본드 포워드 거래를 위해 5년물을 대차 매도하면 대차 수수료와 5년물 금리를 합한 것보다 30년물 금리가 높아야 하는 것이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초장기물과 단기물과의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본드 포워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DB손해보험, 삼성생명 등 본드 포워드 비중을 실제로 확대하고 있다”면서 “최근 일드 커브가 스트프닝 전제조건이 부합해 이 같은 거래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실수요자인 보험사 영향에 더해 트레이딩 단에서 보면 증권 쪽도 영향이 있는데 증권사들의 채권 시장 내 힘이 커졌다. 큰손이 대형 증권으로 넘어간 상황인데 채권 발행 북(book, 자금운용한도)이 20조원이 넘는다”면서 “증권사는 원금과 이자로 분리한 두 종류의 스트립 채권 가운데 원금채를 보험사에 판매하는데, 스트립 채권을 보험사에 넘길때 종가 기준의 가격을 올려 비싸게 넘겨서 이득을 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IFRS17 도입 이슈에 더해 미 국채 금리 상승세 등 최근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만큼 최근 초장기물 일드 커브 역전 현상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최근 국고채 시장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번주 미국 의회 청문회 등에서의 주요 인사 발언, 향후 국채 입찰 및 경제지표 결과 등에 따라 금리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채 발행량의 탄력적인 조정 등 시장 안정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조용구 연구원은 “이미 발행이 예정된 연간 단위 국채 물량에서 조 단위로 만기별 수급을 조정할 수는 없지만 천억원 단위에서는 수급 비율 조정이 가능하다”면서 “4월 발행 계획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도 정부가 초장기 국채 발행 수급을 조절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 금통위원 지난달 25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우리나라 수익률 곡선은 보험사 및 연기금의 견조한 장기채권 수요 등으로 10년에서 50년물까지 초장기 구간에서 이례적으로 평탄하다”며 “정부에서 초장기 국채 발행을 확대하면 이러한 수급 불균형을 완화, 수익률 곡선 형태를 정상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단지 30년물 등 초장기물 발행 대응은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 조정에 있어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에선 속도 조절 정도 할 수 있지만 백신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는 등 경기 침체를 유발할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금리 방향성을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