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석 양승태 "檢, 용 그리려다 뱀도 못 그려" 작심비판(종합)

by송승현 기자
2019.05.29 18:08:34

"檢 공소장, 법률 자문받은 소설가 글…수사 아닌 사찰"
박병대 "재판거래·사법농단 말만 무성" 비난 동참
고영한 "부적절 측면 있어도 직권남용·직무유기 아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왼쪽) 전 대법원장, 고영한(가운데), 박병대(왼쪽)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은 29일 “용두사미도 이런 용두사미가 없다. 용을 그리려다 뱀도 못 그렸다“며 검찰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양 전 원장은 약 25분간 직접 발언을 통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직접 발언권을 얻은 양 전 원장은 검찰의 공소장과 공소사실을 ‘터무니 없는 얘기’란 취지로 깎아내렸다.

양 전 원장은 “검사들이 정력적으로 공소사실을 말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근거가 없고 어떤 건 소설·픽션 같은 이야기”라며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그에 앞서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겠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이어 “법관 생활 42년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 본다”며 “법률가가 쓴 법률 문서라기보다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서 쓴 한 편의 소설이라고 생각될 정도”라며 날을 세웠다.

양 전 원장은 구체적으로 “공소장 맨 첫머리는 흡사 피고인들이 엄청난 반역죄나 행한 듯이 아주 거창한 거대담론으로 시작한다”며 “재판으로 온갖 거래행위를 하고, 있을 수 없는 재판거래를 꾸민 것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며 모든 것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또 “제일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공소사실을 축약해야 함에도 재판거래는 어디 갔는지 온데 간데 없고, 겨우 휘하 심의관들에게 몇 가지 문건과 보고서를 작성케했다는 것이 직권남용이라고 끝을 냈다”고 지적했다.



8개월 간 이어진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는 사찰과 다름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양 전 원장은 “검찰 신문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조사를 받아보니) 검찰의 조서를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교묘한 질문을 통해 답변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기제돼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수사기록을 보니 통상적인 수사가 아닌 내 취임 첫날부터 퇴임 마지막 날까지 모든 직무행위를 샅샅이 뒤져 그 중 법에 어긋나는 것이 없나 찾아본 것과 같다”며 “이것이 과연 수사인가,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법의 지배가 이뤄지는 나라가 될 것이냐, 아니면 무소불위의 검찰 공화국이 될 것이냐는 이번 재판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전 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 개입 혐의, 법관 부당 사찰 및 인사 불이익 혐의,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및 동향 불법 수집 혐의,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혐의 등 47개 혐의로 지난 2월 구속기소 됐다.

양 전 원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져 이날 처음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역시 검찰의 공소사실을 두고 양 전 원장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법관은 “검찰 공소장은 알맹이, 실체보다는 부적절한 보고서 작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며 “재판거래니 사법농단이니 말 잔치만 무성했다”고 비난에 동참했다. 이어 혐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개별 공소사실에 대한 사실관계와 법리적 문제 일체에 대해 다투는 취지”라며 간단히 의견을 말했다.

고 전 대법관도 “사후에 보기에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있을 수 있어도 곧바로 형사범죄로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볼 수는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뒤 “과연 형사법정에 이를 수준으로 권한을 남용해 후배 법관들에게 의무 없는 일들을 시킨 것인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신중하고 냉철한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인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됐다.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 취재진을 비롯한 수십명이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