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배치 반대"..성주 주민 2000명 '집단 상경' 시위

by고준혁 기자
2016.07.21 17:31:23

'외부 세력 없다'..파란 리본·명찰도 착용
삭발식 진행, 대국민 호소문도 발표 등 평화 집회
청와대·여당에 항의서한 전달

경북 성주 주민 2000여명으로 구성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반대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고준혁 전상희 기자] “집행부에 물어 보이소.”

정부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날이 선 눈빛에 목소리엔 분노마저 어렸다. 지난 15일 경북 성주를 찾았다가 ‘날달걀·물병 사례’를 받은 ‘황교안 국무총리 사태’가 ‘외부 세력 개입’에서 비롯됐다는 여론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듯 했다.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손에는 ‘사드배치 결사 반대’가 적힌 깃발을 든 성주 주민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극도로 말을 아꼈다.

지난 16일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투쟁위)가 발족한 지 닷새째인 21일 오후 성주 주민 2500명(경찰 추산 2000명)이 서울역 광장에 운집했다. 저마다 ‘사드배치 결사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있었다. 외부 세력이 아니란 뜻에서 가슴엔 파란 리본을 달았고 주소와 이름을 적은 명찰을 목에 건 사람들도 있었다. 취재에 응하지 않겠단 뜻으로 ‘X표시’가 적힌 마스크를 착용한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50여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길이었다.

김안수 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드 배치라는 실수를 모두에게 알리고 반드시 철회할 것을 알리고자 천 리를 달려 왔다”며 “(정부가)어제는 후보지, 오늘은 바로 최적지 이런 식으로 발표했다.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장관이나 정부 관계자가 현장 방문 한번 없이 책상 위에서 결정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어떻게 (주거지와)1.5㎞ 밖에 안 떨어진 곳에 ‘듣도 보도 못한’ 무기를 들여놓을 수 있나”라고 항의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아들, 딸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생업도 놔두고 처절히 투쟁하는 것”이라며 “일부에서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하며 색깔까지 입히고 있는데 성주 군민은 대한민국의 성실한 국민이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 법적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김항곤 성주군수도 “사드 배치는 한반도 평화에 위협하고 국민들의 생존권도 저해하는 것”이라며 “우리 지역 말고 다른 지역에 설치하라는 단순한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드 배치 자체도 문제지만 결정 과정이 더 큰 문제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부인과 함께 왔다는 류모(70)씨는 “국가안보상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일방적 결정은 문제가 있다”며 “성주 군민들에게 충분히 이야기해 적절한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친구들과 함께 올라왔다는 대학생 이모(25)씨는 “성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든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투쟁사를 마친 김 군수와 배재만 군의회 의장은 삭발을 한 뒤 미리 준비해온 X표시가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한 채 5분간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 유일하게 ‘외부인’ 자격으로 참석한 이부영 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연대사를 이어갔다.

이 이사장은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미국이 본토를 지키기 위해 사드망을 구축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최전방 망루가 성주의 사드 기지”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사드에 배치되는 포탄은 48대다. 수없이 날아오는 미사일을 48발 갖고 어떻게 떨어뜨릴 수 있겠나”고 반문한 뒤 “중국과 러시아의 핵 기지를 들여다보는 데 중점이 있다. 사드는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선제공격의 목표물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투쟁위가 집회를 열고 있는 곳에서 약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진리대한당 소속 회원 20명이 사드배치를 찬성하는 집회를 열었지만 양측 간 별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은 45개 중대, 3000여명의 경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한편 김 군수와 배의장, 투쟁위원장 등 투쟁위 대표단은 이날 집회를 마무리 지은 뒤 청와대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방문해 성주 군민들의 항의서한을 전달할 계획이다.

김항곤 성주군수가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반대 집회’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항의하는 뜻으로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