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시련에 주저앉을 뻔"…‘회계 부정’ 겪은 정의연, 올해 마지막 수요집회

by이소현 기자
2020.12.30 16:34:05

1472차 수요시위, 코로나19로 온라인 생중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의혹 제기로 시련
내년 1월 日 상대 위안부 피해자 소송판결 ‘촉각’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회계 부정’ 의혹으로 일본군 위안부 인권운동 30여년 역사상 가장 혹독한 한 해를 보냈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이 올해 마지막 수요 시위를 진행했다.

내년 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을 앞두고 정의연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30일 서울 종로구 소녀상 인근에서 열린 1472차 일본군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활동가들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정의연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1472차 정기수요시위’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침에 따라 집회 참여가 제한되면서 경찰은 통제선을 설치해 출입을 제한했다. 이날 전국에 한파경보·주의보가 발령되면서 기온이 뚝 떨어져 올겨울 최강추위가 몰아쳤지만, 정의연은 올해 마지막 수요시위도 예정대로 진행했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이날 “30여년을 (위안부) 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이 올해 너무도 큰 시련을 당했다”며 “역사 속 진실을 외쳤던 사람들이 주저앉을 뻔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그렇지만 오늘 할머니들을 추모하면서 당당하게 서 있다”며 “2020년을 보냈던 올 한해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데 위기와 어려웠던 순간에 진실을 믿고 함께 손잡아주셨던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인권운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 사무총장은 “할머니들의 어려웠던 증언, 당당했던 활동, 평화와 인권을 지켜나가는 운동과 외침으로 기록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이 지난 5월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후원금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다 눈물을 보이고 있다.(사진=뉴스1)
정의연은 이날 날씨처럼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을 제기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위안부 인권운동의 중심축인 정의연과 전 정의연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정의연에 이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 대한 후원금 유용 의혹도 제기되는 등 올 한해 위안부 인권운동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정의연은 지난 9월 △허위공시 및 공시누락 △보조금 중복지급 △피해자 직접지원 외 기부금 사용 △후원 수입 지출 일부 누락 △안성쉼터 헐값 매각 △안성쉼터 불법 증축 등 검찰의 고발 불기소 처분 내용을 공개하며 “제기된 의혹에 대해 검토했으나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무차별적으로 제기된 의혹들이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준사기·업무상횡령·준사기 등 혐의로 지난 9월 불구속 기소된 윤 의원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문병찬)의 심리로 지난 11월 30일 열린 윤 의원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변호인은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내년 1월 11일 열린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11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 증인 자격으로 출석해 증언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스1)
특히 정의연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2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앞으로 위안부 운동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봤다.

한 사무총장은 “내년 법원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1심 선고를 주목하고 있다”며 “정확하게 법적으로 기록하고 가해자에게는 책임을 묻고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역사적인 날이 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도하겠다”고 언급했다.

내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한국 법원의 판단이 처음 나온다. 1심 판결이지만, 한국 법원의 판단이 처음 나오는 만큼 한·일 양국 모두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과 유가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의 1심 선고는 애초 지난 11일 예정이었으나 내년 1월 8일로 미뤄졌다. 아울러 위안부 피해자 고 곽예남 할머니 등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오는 13일 오후 2시로 1심 선고기일이 잡혔다.

일본 측은 그동안 국제법상 국가(정부)는 다른 나라의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소송 참여를 거부한 채 원고 측 주장을 각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원고 측은 주권면제가 불멸의 법리가 아니며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에까지 적용될 수 없다고 맞섰다.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한 소송은 일본을 비롯해 미국 법원에서 모두 가로막혀 남은 곳은 오직 모국의 법정뿐이다. 정의연에 따르면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네 건의 소송에 대해 일본의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2000년에 한국·중국·대만·필리핀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5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미국의 법원도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했다.

한 사무총장은 “일본발 영자 신문을 보면 일본 관료들이 한국 정부에 ‘2015 한일합의’를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제대로 된 한일합의가 아니었다고 말한 것에 그치지 않고 외교적 보호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행사해야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정의연은 지난 27일 ‘2015 한일합의’ 5주년 입장문을 통해 “2015 한일합의는 사망했다”며 “대한민국 정부와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10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6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작품이 놓여 있다.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