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檢 주류 '특수·공안'은 옛말…신주류는?

by이연호 기자
2021.09.08 18:58:46

공안·특수부 오랫동안 檢 엘리트 코스 통해
'공안통' 김기춘·황교안·정점식…'특수통' 안대희·윤석열·한동훈
남북 관계 개선, 수사권 남용 논란 속 내리막길
尹 총장 시절 '특수통' 재도약…秋, 특수통 '말살'
인권 부서 강화 움직임에도 주류 등극은 '...

[이데일리 이연호 하상렬 기자]“제가 선거법 전문가입니다. 손 검사는 기획통으로 알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고발 사주’ 의혹의 키맨으로 떠오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같은 답변에 새삼 검찰 내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어떤 한 분야에 정통(精通)한 사람의 전문 분야 뒤에 붙이는 ‘통(通)’이라는 한자는 검찰 내부에서도 다양한 부서 뒤에 쓰인다. 가령 공안통, 특수통, 형사통, 기획통 같은 식이다.그간 검찰에서는 소위 어떤 ‘통’에 속해 있는 검사인가에 따라 그들의 출세 여부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그들의 미래가 그려지기도 했다. 세칭 주류 부서 출신 검사들은 검사장 이상 고위간부의 자리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비주류 부서 출신들은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채 비주류 부서를 전전하다 검찰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검찰에서 오랫동안 주류로 대접 받은 검사들은 ‘공안통’이었다. 그 라이벌로는 ‘특수통’ 정도가 거론됐다.

전두환 정권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공안 검사들의 전성시대였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목적에 따라 국가 안보 관련 대공·테러 사건, 선거 및 노동 관련 사건 등을 전담해 온 검찰 공안부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끗발’있는 부서였다. 검찰에선 “출세하려면 공안으로 가라”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공안부는 오랫동안 최고 선망 부서로 꼽혔다. 이런 이유로 사법연수원 동기생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는 엘리트 검사들이 공안부에 배치됐다.

박정희 정권까지 주로 대공 사건을 처리하던 공안 검사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 이후엔 각종 시국 사건이 급증하면서 선거·노동·학원·집회·시위 사건까지 모두 관장했다.

공안통 검사들은 하나같이 출세가도를 달렸다. 박근혜 정권 시절 당시 각각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황교안 전 총리와 김기춘 전 실장은 모두 공안 검사 출신이다. 황교안 전 총리의 오른팔로 통하며 황 전 총리가 법무부 장관 시절 검사장으로 승진한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도 공안 검사로 명성을 떨쳤다.

황 전 총리는 대검찰청 공안3과장과 1과장을 거쳐 서울지검 공안2부장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역임했다. 법조계에선 국가보안법과 집회·시위법 해설서를 집필한 그를 ‘미스터 국가보안법’으로 불렀다. 김기춘 전 실장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부장,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 공안통 요직을 모두 거친 대표적 공안통이다. 그는 공안 검사로 재직하던 1974년 고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3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TFT(태스크포스팀) 팀장을 맡았던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과 대검 공안부장 등을 거쳤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 민주화 이후 시대 흐름의 변화에 따라 공안부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급기야 문재인 정권 들어 ‘공공수사부’로 간판을 바꿔 달고 선거와 노동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데 그치고 있다.

대표적인 특수통 전·현직 검사들. (왼쪽부터) 안대희 전 대법관, 윤석열 전 검찰총장,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사진=연합뉴스.
공안부의 라이벌로 꼽히는 특수수사부(특수부)는 권력형 비리 수사 등을 전담하는 부서다. 수사 대상은 주로 정치인, 재벌 총수 등 우리 사회에 소위 ‘힘 있는 사람들’이다. 검사들 입장에서, 하루 종일 서류에 파묻혀 잡범들을 상대하는 형사부 검사와는 달리 사회의 거악을 척결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특수부 검사는 ‘폼나는’ 부서였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우장훈 검사가 큰 사건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잘 나가는’ 검사의 대표 코스인 대검 중수부에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사권 남용, 정권 하명 수사 논란 끝에 박근혜 정권 당시 특수부의 중심인 대검 중앙수사부가 폐지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특수통의 대표 검사들로는 안대희 전 대법관, 윤석열 전 검찰총장,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이 있다. 특수통 검사들은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대거 중용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지난해 검찰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윤 전 총장과 강한 대립각을 세웠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말살’에 가까울 정도로 특수부 검사들을 조직 개편과 인사를 통해 무참히 쳐냈다. 반면에 ‘형사·공판’ 검사 우대 기조를 분명히 하며 이들을 대우했다. 하지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기조에 따라 지난 6월 추가적인 검찰 조직 개편을 실시해 형사부의 수사 권한도 대폭 축소했다.

그렇다면 현재 검찰 주류 부서는 어디일까. 검찰 내부에서는 이 질문에 쉽사리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외형적으로 ‘검찰 개혁’ 기조 속에 가장 부각된 곳은 인권 관련 부서다. 추 전 장관은 검찰총장 직속 인권정책관을 신설했고, 박 장관은 전국 8개 검찰청에 ‘인권보호부’를 설치했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사법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 속에서 반대급부 성격으로 외형상의 눈에 띄는 변화만 있을 뿐, 비수사 부서인 이곳이 주류라고 평하는 건 무리라는 게 중론이다.

한 현직 검사는 “인권 관련 부서는 아직 정착 단계이기 때문에 검사들의 선호도를 평가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또 다른 현직 검사도 “아직까지는 특수부, 공공수사부 같은 인지 수사 부서에 대한 선호도가 큰 것 같다”며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 기조 속에 인권 부서에 대한 선호도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 현재 검찰 내부의 신주류에 대해 ‘주류가 없는 것이 신주류다’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흘러나오는 건 바로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