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주식 매도’ 前 삼성증권 직원들, 2심서도 집행유예

by박순엽 기자
2020.08.13 16:13:04

삼성증권 전·현직 직원, 항소심에서도 형량 그대로
1심에서 빠진 벌금형 추가…원심 판단 대체로 유지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잘못 입고된 회사 주식을 팔아치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前) 삼성증권 직원들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그대로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면서 현행 법률에 따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들에게 벌금형을 추가했다.

서울남부지법 (사진=이데일리DB)
서울남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변성환)는 13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증권 전 과장 구모씨와 최모씨에 대해 1심 형량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함께 기소된 이모씨와 지모씨에게도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형을 그대로 내렸다.

다만 이날 재판부는 1심에서 빠진 벌금형을 이들에게 추가했다. 자본시장법 제447조 제1항에선 ‘특정한 범죄로 징역에 처할 때 벌금을 병과(동시에 둘 이상의 형벌에 처하는 일)한다’고 규정하는데, 1심에선 벌금을 병과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구씨와 최씨에겐 2000만원, 이씨와 지씨에겐 1000만원의 벌금이 각각 추가로 부과됐다.

아울러 재판부는 구씨와 최씨에겐 120시간, 이씨와 지씨에겐 8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함께 내렸다.

이들과 함께 재판을 받은 나머지 4명에 대해선 피고인과 검찰 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과 같이 1000만~2000만원의 벌금형을 그대로 선고했다. 즉, 항소심에선 원심 판단을 대체로 유지하면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들에게 벌금형만 추가한 셈이다.

법원은 삼성증권 직원의 행위가 투자자 및 회사의 손실과 함께 신뢰도 하락 등 무형의 손실까지 입혔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매도 행위 탓에 피해 회사의 주가가 급락해 다른 투자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할 위험을 제공했고, 피해회사에도 다른 투자자들의 손실 보전 조치 등을 위해 95억원 가량을 지출하게 하는 등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우리사주 조합원 2018명 대부분과 달리 임의로 주식을 매도해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하지 않으리라고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신의 관계를 저버렸다”면서 “피고인들의 범행은 증권 업무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추락시켰고, 피해회사 신용도 평판에도 손상을 가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모두 초범인 점 △범행으로 얻은 피고인들의 이익이 없는 점 △주식을 잘못 입력하는 과정에 피해회사의 과실이 적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고인들이 해고·정직을 당한 점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확정돼 피해회사에 적지 않은 액수를 지급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들은 지난 2018년 4월 6일 자신의 계좌에 잘못 입고된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아 시장에 혼란을 가져온 혐의로 그해 7월 기소됐다. 당시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배당금을 입금하면서 담당 직원의 전산 실수로 1주당 1000원이 아닌, 1주당 1000주의 자사주를 직원 2018명의 계좌로 입력한 게 발단이었다.

이 때문에 잘못 발행된 주식은 28억 1000만주에 달했고, 이는 삼성증권 정관상 주식 발행 한도를 수십 배 뛰어넘는 유령주식이었다. 그러나 이를 받은 삼성증권 직원 중 16명은 주식 501만주를 시장에 내다 팔았고, 삼성증권 주가는 장중 최대 11.7% 폭락했다. 다른 5명도 주식을 매도하려고 했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유령주식을 실제 팔거나 매도 주문을 낸 삼성증권 직원 21명을 고발했다. 검찰은 매도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고의성이 약한 13명은 불기소 처분하고, 나머지 8명만 재판에 넘겼다. 당시 검찰은 이들이 주식을 매도하면서 삼성증권이 존재하지 않는 주식의 매매 계약을 이행하려고 하면서 약 90억원의 손해를 봤고, 주가 폭락으로 일반 투자자들도 큰 피해를 봤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