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에도 오르지 않는 물가…내수침체 가능성?

by김형욱 기자
2018.04.03 15:27:25

3월 근원물가 6개월째 1.5% 밑돌아
지난해 GDP대비 민간소비 역대최저
경기 반등에도 가계 체감 안이어져

최근 1년 소비자물가지수 중 근원물가를 나타내는 농산물·석유류 제외지수와 식료품·에너제 제외지수의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추이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목표치(2.0%)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1.5% 안팎 수준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통계청


[이데일리 김형욱 김정남 최훈길 기자]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라는 물가인상 요인에도 이례적 저물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가계가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수출을 중심으로 수치상 경기가 회복하고 있지만 서민 체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올 3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3월 근원물가지수는 전년동기대비 1.3% 오르는 데 그쳤다. 6개월 연속 1.5%를 밑돈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도 1.4%였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중장기 근원물가 인상률 목표치를 2.0%로 해 놓고 있지만 1년 넘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원물가지수란 일반 소비자물가지수에서 가격 변동성이 큰 석유류와 농산물을 뺀 것이다. 실질적인 수요에 따른 물가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나 서민 체감도를 반영한 생활물가지수의 상황도 비슷하다. 3월 지수가 전년보다 각각 1.3%, 1.1% 오르는 데 그쳤다. 월별 소비자물가지수가 반년 넘게 1%대 상승에 그친 건 2016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수치=통계청
농축수산물 물가는 비교적 큰 폭(2.1%) 올랐다. 소비자물가를 0.21%p 끌어올렸다. 농산물이 4.7%, 수산물이 5.2% 올랐다. 특히 쌀 가격은 26.4% 오르며 월 단위 전년 대비 상승 폭으론 21년9개월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지난해 쌀값 급락 이후 농가소득 보전을 위해 쌀 생산량 감축을 추진한 결과다. 오징어도 생산량 감소로 가격이 33.1% 올랐다.

올 초 최저임금 인상 폭을 역대 최대수준으로 늘린 데 따른 영향도 일부 엿보였다. 가정용품 및 가사서비스(2.9%↑), 음식 및 숙박(2.5%↑) 부문의 상승 폭도 상대적으로 컸다. 가사도우미료가 전년보다 11.0% 올랐다. 외식 부문 가격조사 항목별로도 김치찌개, 설렁탕 등 39개 항목 중 37개의 물가가 올랐다. 외식 항목에 포함하는 학교급식비가 무료급식 확대로 13.0% 내린 걸 고려하면 실질적 외식물가 인상 폭은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물가 인상 폭은 제한적이었다. 나머지 대부분 항목 물가인상은 0~1%대에 그쳤다.

기획재정부는 “앞으로도 공공요금 안정 등에 따라 물가 안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통계청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이란 물가상승 요인에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이례적 현상이 오히려 우리 경제의 침체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물가 인상은 당장 서민에게 부정적 요인이기도 하지만 경기가 살아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한은의 한 금융통화위원은 “세계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수출 증가세는 지속하고 있지만 내수는 그만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근원물가가 (목표치인 2.0% 수준까지) 오를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가계소득을 높여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것으로 기대해 왔다. 지난달 중소기업 취업 근로자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청년 일자리 대책과 함께 4조원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체감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실제 물가가 오르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체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는 지갑을 닫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최종소비지출 비중은 역대 최저인 48.1%까지 떨어졌다. 3년 연속 하락이자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70년 이후 최저다. 체감 경기가 나쁘다 보니 민간 소비 주체인 가계가 번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 저물가 소비 하락이 다시 물가상승률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민간소비 비중 하락은 근본적으로 일자리, 소득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추구하는 소득주도 성장 효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수치=한국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