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내년 사업계획 고민.. 총수 송환에 트럼프까지 '내우외환'

by이진철 기자
2016.11.14 16:39:02

최순실 게이트 여파 총수 줄줄이 소환.. 검찰 수사결과 주시
美대선 트럼프 당선.. 보호무역·환율 등 불확실성 확대

[이데일리 이진철 최선 신정은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최순실-트럼프-경제사령탑 부재’의 3각 파도로 내우외환에 빠졌다.

안으로는 ‘최순실 게이트’로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후 수사결과가 경영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잔뜩 움추러진 모습니다. 밖으로는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트가 당선되면서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율을 비롯한 보호무역 정책 등의 예상 시나리오를 재검토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외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이 깊어지면서 내년 투자계획이나 사업목표치를 보수적으로 세우는 분위기”라며 “위기에 대비해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는 긴축경영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매년 12월 초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후 일주일 뒤 간격으로 임원인사와 계열사별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하지만 올해는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훈련과 컨설팅 자금지원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받아 어수선한 분위기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시대 불확실한 경제 상황으로 내년도 사업 계획 수립이 쉽지 않는 상황이다”며 “등기이사에 오른 이재용 부회장의 책임 경영이 더욱 강화되면서 인사는 종전보다 더 큰폭으로 이뤄 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갤럭시노트7 사태 수습과 최순실 관련 문제들이 내년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삼성은 올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 27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시설투자를 집행한 데 에 이어 내년에도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대규모 투자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 ‘선택과 집중’을 위한 계열사 사업재편과 신규 먹거리인 바이오 사업에 대한 사업비전 수립도 절실한 상황이지만 자칫 검찰 수사가 장기화될 경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체 자동차 시장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내년 완성차 판매목표치를 높여 잡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올해 연간 판매 목표치를 813만대로 낮춰 잡았는데 이마저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까지 보수적인 판매목표치를 세우면 2년 연속 판매 목표를 낮추는 셈이다.



미국 대선 이후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이 예상되는 것도 수출이 주력인 현대·기아차에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특히 멕시코 현지에 생산공장을 둔 기아차(000270)는 트럼프식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되면 멕시코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완성차의 미국시장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판매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있으며 연말께 세부 내용이 나올 예정”이라며 “현재 시장 상황으로는 긍정적인 수치가 나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미국 대선 이후 글로벌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 여건도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공백이 지속되면서 경제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의 주재로 계열사 CEO와 사업본부장들로부터 올 한해 성과와 내년 사업계획을 보고받는 업적보고회를 이달말 마무리할 예정이다. 구 회장도 다른 재벌총수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13일 미르재단 기금과 관련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지만 경영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LG그룹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인 스마트폰 사업과 신성장동력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자동차부품사업이 사업계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G 관계자는 “실적에 가장 큰 변수인 환율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설정해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면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경제관련 공약의 변화들도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80개 계열사가 사업계획을 작성하는 와중에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변수가 생겼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CEO세미나에서 관계사별 혁신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등 대변혁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연말 임원인사가 대규모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최근 어수선한 정국 분위기로 인해 예년 수준의 인사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화그룹도 국내외 불확실한 경영환경 분위기 속에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선제적인 인사는 이미 완료해 내년 사업계획 수립은 12월 중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화 관계자는 “사업계획에 변동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임직원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포스코(005490) 역시 회장 인선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져 사업계획 수립에도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오준 회장이 연임을 위해선 신청을 12월까지 받은 후 내년 3월 선임이 이뤄져야 하는데 정권 실세가 회장 선임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검찰 수사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글로벌 경영환경을 감안해 사업계획 수립은 이번 최순실 게이트와는 무관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