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정치와 무능관료가 빚은 누리과정 후폭풍

by김정남 기자
2015.10.29 17:39:25

'선거의 해' 2012년 당시, 정치권서 무상공약 바람
누리과정의 법적 정의 미비…교부금 부족 현상도
누리과정 논란 매해 반복될듯…정가 해법 찾아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가 추이. 정부의 당초 예측치와 실제 교부금은 차이가 있다. 단위=조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교육) 때문에 지방교육이 황폐화될 위기입니다. 정부가 시·도교육청에 누리과정 예산을 떠넘겼습니다.” (장휘국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

“국가와 지방은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에서 편성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누리과정 예산이 또 논란이다. 지난해 예산정국 막판 누리과정 탓에 ‘올스톱’ 위기가 있었는데, 올해 역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영유아 보육·교육에 돈을 대는 주체가 중앙이냐 지방이냐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다.

다만 중앙과 지방간 누리과정 법리 싸움 자체가 소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으로 가든 지방으로 가든 똑같은 세금을 내는 납세자 입장에서는 이런 행정당국 사이의 갈등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애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누리과정에 불을 지핀 건 정치권이었다. 불과 4년여 전이다. 손학규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011년 3월 “무상보육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도 함께 움직였다. 황우여 당시 원내대표(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는 그해 8월 “만 0~2세도 무상보육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3개월 전 정부는 만 5세 누리과정을 발표했는데, 이에 더해 0~2세도 추가하겠다는 의미였다. 여야는 그렇게 0~2세 무상보육과 5세 누리과정을 반영한 예산안을 그해 연말 통과시켰다. 5세 누리과정은 이듬해 3월부터 본격 실시됐다. 2012년 들어 무상보육 바람은 더 거세졌다. 정부는 당장 그해 1월 만 3~4세 누리과정을 발표했다. 0~5세의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였다.

여야의 무상 계획들이 줄을 이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2012년이 총·대선이 겹친 ‘선거의 해’였기 때문이다. 박근혜·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도 0~5세 무상보육을 공약했다. 이후 2013년 2월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부담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성급한 정책은 갈등도 잉태하고 있었다. 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정부는 2012년 시도교육청을 배제한채 누리과정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누리과정을 둘러싼 최대 쟁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규모다. 정부는 매년 내국세의 20.27%를 지방교육재정으로 내려보낸다. 이 교부금을 통해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하라는 것이다. 만약 이 교부금 규모가 컸다면 누리과정 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정부의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 예측은 매번 어긋났고, 그에 따라 세수(稅收)도 부족해지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2013년의 경우 실제 교부금은 40조8000억원이었는데, 이는 당초 정부 예측치보다 1조3000억원 부족한 수치다. 지난해에도 4조7000억원 차이가 났고, 올해는 10조원가량 날 것으로 보인다. 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부족한 교부금으로 4조원 규모의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려면 다른 초·중등 교육비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국회 한 관계자는 “누리과정 예산은 늘어나는데 그만큼 교부금이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누리과정 논란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누리과정을 정의한 법적 근거가 애매하다는 논란도 있다.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제23조를 보면, 만 3세 이상 영유아 보육·교육의 실시 비용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도록 규정돼있다. 정부·여당이 누리과정 재원은 지방 몫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다만 영유아보육법상 어린이집은 교육이 아닌 보육기관인 만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는 게 위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상 이 교부금의 목적은 교육기관에 대한 설치·경영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방교육청의 목소리다.

국회 일각에서는 누리과정 자체가 워낙 성급하게 만들어져 법적으로 허술하다는 시각이 있다. 누리과정은 교육과 보육이 합쳐진 개념인데, 현행법은 여전히 둘을 구분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서 누리과정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세수가 크게 늘지 않는 이상 누리과정 논란은 이어질 게 뻔하고, 결국 그 부담은 국민들이 져야 하는 까닭이다. 이는 국가적으로 추진 중인 저출산 대책과도 어긋난다.

정가 한 관계자는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운 복지정책의 특성상 누리과정을 없애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법적 미비 등의 문제점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 등 일각에서는 내국세의 20.27%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25% 수준으로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