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유족 특별채용, 차별 아닌 약자배려"…대법, 단협 인정(종합)

by남궁민관 기자
2020.08.27 16:35:15

기아차 근무 중 벤젠 노출돼 사망한 직원 자녀
단협 특별채용 조항 들어 현대·기아차에 손배소
1·2심 채용의 자유·형평성 등 이유로 기각했지만
대법관 13명 중 11명 "해당 단협 유효" 파기환송

[이데일리 남궁민관 박경훈 기자] 회사에서 근무 중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는 것은 ‘약자를 위한 배려’인가, 아니면 ‘공정한 채용을 막는 고용세습’인가. 두 사회적 가치가 맞붙은 현대·기아차 산재 유족 특별채용 사건에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회부·공개변론까지 진행한 결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결론 내렸다.

특별채용이 구직자들의 채용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일부 대법관의 소수 의견이 있었지만, 실제 특별채용을 통해 채용된 산재 유족의 숫자가 매우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오히려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진행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공판에서 선고를 내리고 있다.(사진=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7일 현대·기아차에서 근무하다 업무상 재해로 숨진 A씨의 유가족들이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A씨는 기아차에서 근무하다가 2008년 2월 현대차로 자리를 옮겼고, 직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 받아 2010년 사망했다. 기아자동차 근무 당시 벤젠에 노출된 데 따른 산재였다. 이에 A씨 자녀들은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에 대해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기아차 노사간 단체협약을 근거로 자녀 B씨를 채용해달라는 내용의 손해배상 등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항소심은 기각이었다.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을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제103조에 의해 산재 유족을 특별채용토록한 단체협약은 기업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채용 기획의 공정성 역시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무효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전원합의체 회부 결과 13명의 대법관 중 11명이 민법 제103조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파기환송’ 다수의견을 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2명의 대법관은 “기업의 필요성이나 업무능력과 무관한 채용기준을 설정해 일자리를 대물림함으로써 구직자들을 차별하는 합의로, 공정한 채용에 관한 정의관념과 법질서에 위반돼 무효”라고 소수 의견을 냈지만, 이에 대해서도 다수 의견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김 대법원장은 “현대·기아차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단체협상에 합의했고 결격사유가 없는 근로자로 채용 대상을 한정하고 있어 채용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며 “또 현대·기아차의 사업 규모가 매우 크고 근로자 숫자도 많은 반면 특별채용된 산재 유족의 숫자는 매우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직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의 고용세습 비판과 관련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소자 자녀를 특별채용하거나 우선채용하는 합의와도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가 하면, 이번 현대·기아차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1990년대부터 자율적으로 맺어진 협약인 만큼 헌법 제33조에 의해 인정되는 협약 자치의 관점에서도 유효하다고도 했다.

한편 산재 유족 특별채용을 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6월 17일 진행한 공개변론에서는 재계를 대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업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며 우리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채용의 공정 내지 기회 균등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노동계를 대표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일을 하다가 회사의 과실, 회사의 사업 활동에 내재된 위험 때문에 목숨을 잃은 직원에 대해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찬성의 목소리를 내며 팽팽한 대립을 보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