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순항하는데 양극화 심화’…소득 성장론의 역설

by김형욱 기자
2018.05.29 18:02:19

정부지원 확대에도 더 나빠진 저소득층 살림
기대심리마저 위축…정책 방향 선회 주장도

(수치=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소득 5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전국·2인이상)


[이데일리 김형욱 김정남 기자] 전체적인 경제지표 수치는 순항하는데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악화하는 게 통계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현 정책의 방향과 최소한 속도라도 조정해야 할 시점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문재인 정부 3대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되, 보완책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 것도 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통계청이 집계한 올 1분기 하위 20%(5분위 중 1분위) 2인 이상 가구 소득은 월평균 128만7000원으로 역대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상위 20%(5분위) 소득이 역대 최대 폭으로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03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이전소득이 근로소득을 넘어섰다. 1분기 1분위 소득 중 정부 재정지원을 뜻하는 이전소득(월 59만7000원)은 최대 폭으로 늘었다. 그러나 근로소득(47만3000원)과 사업소득(18만8000원)이 이보다 더 큰 폭으로 줄었다. 정부 재정지원이 고용·경기 악화 탓에 사실상 효과를 못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전소득은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급여 같은 공적 이전소득과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생활비 같은 사적 이전소득이다.

특히 근로소득 감소 폭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후 최대였다. 절대적인 액수로도 7년 전인 2011년 1분기(46만2000원) 이후 가장 낮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은 저소득층이다.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추가 소득 중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이 높다 보니 이들의 소득을 늘려주면 소비가 진작되고 경제가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는 논리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대로는 기대하던 효과를 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소비심리도 저소득층부터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5월 월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생활형편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93으로 한 달 전 95보다 2p 내렸다. 100만~200만원 가구는 100에서 95로 더 크게 내렸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돈다는 건 6개월 후에도 생활형편이 더 나빠질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계층은 달랐다. △200만~300만원(97→102) △300만~400만원(103→101) △400만~500만원(102→102) △500만원 이상(107→107) 등의 지수는 100 이상으로 오르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은행이 매달 설문조사를 하는 소비자동향조사 중 생활형편 소비자동향지수(CSI)다. 월 소득 100만원 미만과 100만~200만원 같은 저소득층 가구의 최근 CSI 추이다. 문재인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과는 달리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생활 형편뿐 아니다. 100만원 미만 가구의 현재경기판단 CSI는 79로 전월보다 2p 내렸다. 전체 지수(86→89)가 3포인트 올랐음에도 저소득층의 시각은 더 어두워졌다.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100만원 미만 가구와 100만~200만원 가구의 이번 달 취업기회전망 CSI는 각각 92, 86으로 전월보다 각각 2p, 1p 낮아졌다. 전체 지수가 94에서 96으로 상승한 것과는 다른 기류다.

학계에선 현 정책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소득을 늘리는 방식을 성장 모델로 실현한 전례는 없다”며 “우리나라도 실험적 성격이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원 고위인사 출신의 한 관계자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결국 생산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며 “반도체 외에는 산업 전반이 부진한 상황에서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장기적으로 업종별 경쟁력을 따져볼 때”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