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포럼` 트럼프 시대 개막 전 마지막 소통의 장

by양희동 기자
2017.01.11 15:06:08

中 시진핑 국가 주석 첫 직접 참석해 눈길
마윈 알리바바 회장 등 트럼프 시대 준비 분주
우리 기업 특검 수사 등으로 골드타임 놓칠까 우려

스위스 다보스에서 오는 17~20일(현지시간) 열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첫 참석하는 등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측근들과의 소통 창구를 만들기 위한 치열하게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눈으로 뒤덮힌 다보스포럼장 전경. [세계경제포럼 제공]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재계 총수들의 다보스포럼 참석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사실상 막혀버린 정부 차원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측과의 소통 창구를 다시 잇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또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인 차원에서의 전략 수립 및 인맥 확보에도 더없이 좋은 기회다. 이미 중국 알리바바 마윈 회장과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 프랑스 LVMH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최고경영자(CEO) 등은 일자리를 무기로 트럼프 당선인과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삼성·현대차·LG 등 주요 수출기업들도 관세 장벽 등으로 인해 미국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라 이번 포럼에서 트럼프 측과 만나 일자리 확대 등을 당근책으로 제시, 유리한 고지를 반드시 선점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검이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 주요 기업 총수들의 다보스포럼 참석을 위한 출국금지 일시 해제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과 일본, 프랑스 등 주요 국가의 정치·기업인들은 오는 20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이전 사실상 마지막 소통의 기회인 다보스포럼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사상 처음으로 다보스포럼에 직접 참석하는 등 트럼프 시대 개막에 대비한 광폭 행보에 시동을 걸고 있다. 시 주석은 포럼에서 트럼프 측근들과도 회동해 양국 간 다양한 의제에 대해 논의할 전망이다. 시 주석의 포럼 참여는 트럼프 측 인사들과 중국 기업인들의 만남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과 포럼에 동행하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 당선자와 만나 일자리 100만개 창출을 논의하며 향후 미국 시장 진출 및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마윈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협력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만큼 포럼에서 만날 트럼프 측 핵심 인사들과는 보다 구체적인 사업 방향을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을 만난 직후 “미국 농가와 소기업들이 알리바바를 통해 중국 등 아시아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방안과 미국 중서부지역의 100만여개 소기업의 판로 개척 지원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힌바 있다.

일본도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을 방문 중인 가와이 가쓰유키 총리 보좌관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이후 조기 정상회담 실현을 타진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도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 500억 달러 투자와 일자리 5만개 창출을 약속했다.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프랑스 패션업체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CEO도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약속하며 수출 관세 등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했다.



우리나라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0일 트럼프 당선인과 10여 분간 첫 전화통화를 성사시켰지만 탄핵 사태로 인해 외교 채널이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현재 우리 기업에 가장 시급한 현안은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한 경영 전략 수립이다.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CES 2017’에서도 윤부근 삼성전자(005930) CE(생활가전) 부문 사장과 조성진 LG전자(066570) 부회장 등 주요 가전업체 수장들이 한 목소리로 트럼프 시대를 맞아 관세 위험을 회피해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 및 신설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다보스포럼에 각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총수들이 특검의 출금금지로 발이 묶이면서 사전 협상이나 관련 논의가 차단될 위기에 놓였다. 트럼프 취임 이후의 미국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최순실 게이트 수사로 인해 우리 기업이 기존에 구축해놓은 네트워크조차 무력화 돼 활용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전경련이 지난 2009년부터 8년간 다보스포럼에서 열었던 ‘한국의 밤’ 행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행사는 국내외 정·재계 인사들이 함께 모이는 협력의 장으로 활용돼 왔지만 이번엔 개최 자체가 무산됐다.

갈길이 바쁜 상황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기업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대선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일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제 부활과 금산분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재벌개혁안’을 발표했다. 문 전 대표가 삼성·현대차·LG·SK·롯데 등 10대 그룹을 청산의 대상 지목하면서 그의 집권 여부에 따라 향후 기업 경영 활동이 더욱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은 시 주석과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 트럼프 당선인과의 소통 창구를 열어주고 경제인들은 일자리를 무기로 보호무역의 충격을 선제 방어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트럼프 시대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특검 수사와 정치권의 재벌 개혁 추진 등이 오히려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