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옥죄기…서울시, 반포1단지 이주 5개월 늦춰

by김기덕 기자
2018.03.06 17:40:09

서울시, 제3차 주거정책심의위원회 개최 결과
방배13구역·한신4지구 등 관리처분 인가 지연
금융비용 증가, 건축계획 변경 등 차질 불가피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전경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 강남 재건축 대어인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를 포함해 서초구 재건축 주요 단지의 이주 시기가 최장 5개월 이상 늦어지게 됐다. 서울시가 정부의 재건축 시장 규제 압박에 동참하면서 ‘이주 시기 조정권’(관리처분계획 인가 시기 조정 권한) 카드를 또다시 꺼내든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 단지는 전반적인 재건축 사업 일정이 지연되면서 금융 비용 발생,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 등이 불가피해졌다.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 줄줄이 이주 늦어져

서울시는 6일 ‘제3차 주거정책심위위원회’(이하 주정심)를 열어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2120가구) 관리처분 인가 시기를 오는 12월로 조정했다. 당초 반포주공1단지 조합은 5월 께 서초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7월부터 이주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심의 결과로 최소 5개월 이상 이주 시기가 늦춰졌다.

주정심에서는 또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아파트(2673가구), 방배13구역(2911가구)의 관리처분 인가 시기도 각각 7월과 9월로 연장했다. 이들 단지 조합은 당초 5월 재건축 인가, 7월 이주를 계획했다. 잠원동 한신4지구(2898가구)의 관리처분 인가 시기는 3월에서 12월로 미뤄졌다. 한신4지구 조합은 당초 내년 1월부터 이주한다는 계획서를 제출한 바 있다.

서울시는 이들 4개 단지가 비슷한 시기에 이주할 경우 전·월세난 등 주변 주택시장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보고 이주 시기를 조정했다. 서초구 4개 사업지 모두 기존에 약 2000~3000가구씩 거주하는 등 규모가 커 한 단지만 이주를 시작해도 일대 주택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주 시기 조정은 주로 재건축 단지가 한꺼번에 대규모로 멸실돼 전세난 등이 우려되는 경우 이를 조정하기 위해 활용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초구 인근 지역에서 올 상반기 6149가구, 하반기 7065가구 등 1만3000여가구의 이주가 계획돼 있는 상황에서 이들 단지의 이주가 겹치면 올해에만 2만가구가 한꺼번에 멸실돼 주택시장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번에 조정된 인가 시점 이후에도 일정 기간 서초구에서 인가를 확정하지 못할 경우에는 재심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정심에서는 각 재건축 조합이 관할구청에 제출한 관리처분계획에 대한 인가 시기를 조정한다. 심의 대상 재건축 단지는 정비사업으로 사라질 주택(멸실) 가구 수가 해당 자치구 전체 재고 주택 수의 1%에 달하거나 단일 단지 규모가 2000가구를 초과하는 대단지 아파트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열린 주정심에서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1350가구)와 진주아파트(1507가구)의 관리처분인가 시기를 각각 7월, 10월 이후로 조정해 최소 6개월 이상 이주시기가 지연됐다. 올 들어 처음 열린 주정심에서는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관리처분인가 일정이 4월 초로 조정했다. 당초 조합 측이 원했던 인가 시기는 지난해 12월이다.

자료: 서울시
◇“공사비 증액되면 누가 책임지냐” 조합 불만 쏟아져

이처럼 재건축 단지의 관리처분 인가가 늦어질 경우 이주 시기 조정 등 전체 사업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관리처분계획 인가는 구청의 고유 권한이지만 서울시가 인가 시기를 늦추면 인가 이후 단계인 조합원 이주→ 철거→ 분양 일정 공고 및 착공 등 전체 사업 일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통 관리처분 인가 이후 2~3개월 뒤 이주가 시작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이주가 연기된 서초구 재건축 단지들은 빠르면 연말이나 내년 1분기 이후에나 이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초구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관리처분 인가 이후 가능한 설계 변경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철거업체 비용, 추가적인 금융 이자 발생 등이 불가피해 조합원들이 불만이 상당히 높다”며 “(재건축 인가 후) 이주 및 철거에만 10개월이 걸리는데 착공이 늦어져 공사비가 늘어나는 건 누가 책임을 질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초구는 정비사업에 따른 멸실 물량에 비해 입주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점도 서울시가 이주시기 연장 카드를 꺼낸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올해 서초구 입주물량은 3728가구이며, 내년에는 593가구로 대폭 줄어든다. 이는 같은 기간 강남구(2018년 1266·2019년 3277), 송파구(2018년 10548가구·2019년 966가구)에 비교해도 월등히 적은 수준이다.

이주 시기 조정이 전세 보증금 미상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구 반포동 S공인 관계자는 “기존 전세계약이 만료된 일부 집주인들은 전세가가 떨어진 상황에서 짧은 거주 기간 때문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며 “이주 시기가 늦어지면서 세입자와 전세보증금 반환 분쟁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