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 기발한 '일감몰아주기'…총수2세 박태영 승계 지원(종합)

by김상윤 기자
2018.01.15 18:47:40

박태영 회사 '서영이앤티' 전사적으로 지원
본사지원+납품업체지원+주식 고가매각
각종 변칙적 수법 통해 이익 몰아준 혐의
매각가치 짬짜미한 회계법인도 징계 검토
하이트진로 "주식매각 억울..소송 대응"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개혁의 ‘칼’을 마침내 빼내 들었다. 재계 55위인 하이트진로(000080)그룹의 총수일가 계열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를 적발하고 총수2세 고발이라는 철퇴를 내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이트진로가 총수일가 소유회사인 서영이앤티를 직접 지원하거나, 납품업체인 삼광글라스를 통해 부당지원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107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법인고발 외에 이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총수2세 박태영 부사장과 비롯해 김인규 대표, 김창규 상무도 형사 고발했다. 일감몰아주기와 관련 총수일가 고발은 한진그룹 제재 이후 처음으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 의결한 사건이라 엄격한 제재가 내려진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지난 2007년4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장기간 예상을 뛰어넘는 ‘일감몰아주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상장사인 서영이앤티는 2016년말 기준 박 부사장(58.44%)을 비롯해 박문덕 회장(14.69%) 등 친족일가 지분이 99.91%에 달하는 계열사로, 생맥주를 담는 통(케그)과 냉각기 등 기자재를 만들며 규모를 키웠다. 하이트진로는 서영이앤티로부터 생맥주 기자재 등을 매입하면서 정상거래와 비교해 부당하게 이익을 몰아줬다. 전사적으로 총수일가 승계 및 지배력 확대를 위해 부당 지원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태영 부사장
구체적으로 하이트진로는 계열사인 서영이앤티에 직접 인력을 지원한 데 이어 납품업체인 삼광글라스를 통해 원자재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유통마진인 ‘통행세’를 취했다. 삼광글라스는 사실상 하이트진로와 전속거래를 맺고 있는 회사로, 하이트진로와 거래를 지속하기 위해 서영이앤티에 일부 마진을 떼더라도 남는 장사로 판단했다.

실제 삼광글라스가 직접 하이트진로에 납품하던 공캔을 서영이앤티를 거쳐 납품하면서 중간에 마진을 취득한 서영이앤티는 매출규모가 2007년 142억원에서 2008~2012년 연평균 855억원으로 6배나 급증했다. 당기순이익의 49.8%에 달하는 56억2000만원의 이익을 챙겼다. 계열사 간 부당지원이 문제가 되자 하이트진로는 유통방식을 바꿔 일감몰아주기를 지속했다. 2013년부터는 삼광글라스가 공캔 원재료인 알루미늄코일을 서영이앤티를 거쳐 구입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서영이앤티는 1여년간 590억원의 매출을 확보하고, 영업이익의 20.2%에 해당하는 8억5000만원의 이익을 얻었다.



이 역시 문제가 되자 하이트진로는 2014년 9월부터 3년간 삼광글라스에 공캔과 전혀 무관한 밀폐용기 뚜껑인 글라스락캡을 서영이앤티를 끼워넣어 하청업체로부터 구입하도록 요구하며 각종 변칙수법을 동원했다. 삼광글라스는 법무법인을 통해 ‘법률리스크’를 검토한 결과,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하이트진로와의 사실상 ‘전속거래’를 감안해 지원행위를 지속했다. 이 기간 서영이앤티는 323억원의 매출을 확보하고, 당기순이익의 1309.9%에 해당하는 18억6000만원의 이익을 부당 취득했다. 신봉삼 기업집단국장은 “10년에 걸친 하이트진로의 부당지원행위로 공정거래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꼬집었다.

하이트진로그룹의 총수2세 회사인 ‘서영이앤티’ 부당지원 현황. 공정위 제공.
박 사장과 김 대표가 이례적으로 개인 고발까지 당한 것은 서해인사이트 매각과정에서 자산가치를 부풀려 서영이앤티에 이익을 몰아준 것 때문이다. 2012년 설립 당시 자본금 5억원에 불과한 회사를 2년 만에 매각가치가 25억원으로 훌쩍 올린 채 같은 건물에 입주한 전산용품 납품업체인 ‘키미데이타’에 넘겼다. 2013년 당시 서영이앤티는 차입금 이자비용 42억원으로 당기순손실 1억5900만원의 순손실을 입으며 자금압박에 시달렸던 상황이다. 키미데이타는 순자산가치가 6억3000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자 하이트진로는 생맥주기기 A/S 업무위탁비를 대폭 인상해주는 ‘이면약정’을 제안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는 매수자와 매각자 간 자산가치 평가 과정에서 ‘짬짜미’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영이앤티의 회계법인인 대주는 자산가치평가 초안을 하이트진로에 전달했고, 하이트진로는 다시 키미데이타의 회계법인인 삼영에 넘겨주면서, 매각가치를 현금흐름할인법(DCF)을 통해 25억원에 비슷하게 설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매수자는 매각가치를 낮게 평가해 싸게 인수하고, 매도자는 매각가치를 올려 비싸게 팔아야 하는데, 양측이 똑같은 평가 결과를 냈다”면서 “이메일 등을 주고받는 등 증거자료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대주·삼영 회계법인에 대해 공인회계사회나 금융위원회의 징계 요청을 검토하도록 기업집단국에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가 징계 의뢰를 검토하고 나선 것은 향후 소송을 대비해 공정위 입증을 명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자산가치 판단 과정에 오류가 있는 만큼 매각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이다. 공정위는 서해인사이트 주식매각 금액이 피심의인이 주장하는 25억원보다 현저히 낮은 14억원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이트진로 측은 총수2세의 고발이 걸려 있는 행정소송 등으로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하이트진로 측은 “공정위 의결 과정에서 다수의 회계법인도 적정한 거래임을 증명했지만 공정위가 불법으로 판단해 아쉽다”며 “향후 행정소송 등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고 의혹을 해소할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