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무너지고 화재 위험도…오세훈 “세운 재개발 더 빠르게”(종합)

by김형환 기자
2025.12.04 13:50:27

58년 된 세운지구, 화재 시 대형사고 우려
지지부진한 사업에 주민들 ‘생존권 위협’
오세훈 “주민·상인 공감대…순차적 진행”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저기 전선을 보세요. 겨울철 불이 나기 딱 좋죠.”

4일 세운지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난 한 주민은 전선이 얼기설기 엉켜 있는 곳을 가리키며 이 같이 말했다. 고양이가 건물 위를 다니며 전선을 건드리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합선이 발생할 경우 화재로 이어져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운지구는 대부분 골목골목에 위치해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가 들어오지 못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주민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각종 건물에는 58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바닥에 깔린 보도블럭은 여기저기가 갈라져 있었고 노후화된 빈 집도 이곳저곳 찾을 수 있었다. 일부 건물에는 콘크리트가 탈락해 있었으며 혹시나 아래로 떨어질까 안전망을 설치한 건물들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종로에서 살아왔다는 상인 60대 A씨는 “여기 앉아 있다보면 뭐가 떨어지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며 “혹시나 머리에 뭐가 떨어지지 않을까 항상 경계하며 다닌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3년 9월 세운상가 외측 벽돌이 떨어져 한 주민이 크게 다쳐 발가락을 절단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세운상가 재개발은 2006년 오 시장의 ‘세운녹지축’ 사업 계획으로부터 시작됐다. 세운상가 일대 상가를 헐고 종묘와 남산을 잇는 대형 녹지를 구성하고 양쪽으로 고층 건물을 짓는 구상이었다.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종묘 경관을 이유로 건물 고도를 최대 75m로 제한했고 사업성이 나오지 않았고 이후 박원순 전 시장이 들어오며 사업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오 시장은 다시 서울시장으로 돌아와 세운지구에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도입, 고층 건물과 대규모 녹지가 공존하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용적률을 높여 건물을 높게 올리는 대신 이로 인한 개발 이익을 주변 녹지 개발에 투입, 종묘부터 남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녹지축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4일 세운지구 일대에 전선이 얼기설기 엮여 있고 뒷편 건물의 외벽이 탈락돼 이를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지망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다만 중앙정부의 반대로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운 재개발 사업을 막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까지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숨이 막히고 기를 누르게 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대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종묘 앞 세운상가 재개발 저지를 위한 법적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약 20년 간 지지부진한 사업 진행에 주민들은 분통을 터르렸다. 이날 오 시장과 만난 세운지구 주민들은 사업 지연으로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세운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김모씨는 “130여명의 토지주들은 2009년 상가 철거에 맞춰 세입자를 내보내 월세 수입마저 끊겼고 당시 받았던 이주비 대출금은 이자가 원금에 맞먹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민생은 돌보지 않고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국가유산청에서 제안한 세계유산영향평가와 관련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세운4구역의 한 주민은 “이미 (문화재청에서) 2009년과 2017년 수차례 각종 평가, 행정명령 등으로 고통을 겪은 역사가 있다”며 “2009년에 신청한 사업시행인가가 2018년에 나왔는데 이제 다시 영향평가를 받으라는 것은 주민들 모두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오 시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빠른 시일 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오 시장은 “장사도 안 되고 사람이 살 수도 없고 밤이면 무서워 들어가기도 어려운 골목길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며 “세운상가에 상가를 가지고 있는 소유자 그리고 상인들이 모두 이 사업을 찬성하고 공감대가 있는 만큼 최대한 속도를 내서 순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