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와 이공계 교류 필요, 병원과 과기원 협력 모델 구축"

by강민구 기자
2024.12.05 16:47:59

[인터뷰]배성철 울산과학기술원 교학부총장
울산대 의대와 협력해 교육 프로그램 공동 운영
의과학AI·의료 영상 등 배우고 교류하며 서로 이해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의대 증원 이슈가 주목받는 가운데 과학기술계에서 의사과학자의 중요성이 떠오르고 있다. 지난 25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7%, 미국국립보건원(NIH) 기관장의 69%, 세계 상위 10개 제약회사 대표의 70%는 의사과학자에 해당할 정도로 제약·바이오·의료 산업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달 25일 울산과학기술원에서 만난 배성철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학부총장(전 의과학대학원장)은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의과학대학원 공동 운영’이 과학계와 의학계의 새로운 협력 모델이라고 제시했다. 독자적으로 의대를 설립하면 좋겠지만 정원 확보, 운영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고 과학과 의학은 기본적으로 성질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배성철 울산과학기술원 교학부총장.(사진=울산과학기술원)
UNIST는 울산대 의대 학생과 UNIST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 교육 과정을 지난해 9월부터 운영해 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등 과학기술특성화대에서 자체적인 병원 설립까지도 염두에 뒀다면 UNIST는 처음부터 협력 모델 구축에 주안점을 뒀다. 울산과학기술원 학생과 울산대 의대 예과 학생이 학점 교류와 대학원 프로그램을 통해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각 분야를 이해하고, 친구로 지내도록 장려하고 있다. 기존 의대와 싸워서 또 다른 의대를 만들거나 병원을 짓는 게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협력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는 셈이다.

배성철 부총장은 “의학은 당장 의료 현장에서 실용적인 부분을 빨리 습득해서 사람을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없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탐구해야 하는 과학 특성과는 차이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빠르게 좋은 의사들을 양성하는 데에 집중해 왔는데 의료와 과학을 이해하는 의사과학자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가령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의대생들이 UNIST에서 직접 레이저 장비를 사용해 보며 기술의 원리 등을 이해하고, 이공계 학생들은 병원에서 실습하며 의료 현장을 이해하고 있다. 의대생과 이공계생이 함께 해커톤 대회에 나가기도 한다. 병원에서도 과학기술원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고, 의대생과 이공계생들이 우호적인 관계도 만들어가고 있다.

배성철 부총장은 “서울대 공대 학생들도 서울대 병원에서 실습하기 어려운 것처럼 실제 이공계생이 의료 현장에서 실습하기 어려운데 울산대 의대의 배려로 학생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의사들을 따라다니면서 수술실과 치료 현장을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직장인이 되면 서로의 언어도 달라지고, 교류하기도 어려운데 학생 때부터 신뢰를 형성하게 해 미래에 협력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UNIST는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서 혁신 기업들도 배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현지에서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 등과 협력해 글로벌 임상과 멘토링 등을 지원하며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기업들이 생겼다. 리센스메디칼이 안과용 접촉식 냉각마취기기 ‘오큐쿨’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드 노보(De Novo) 승인을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배성철 부총장은 “원천 기술을 확보해도 국내에서는 사업화할 여건이 부족하다는 어려움이 있다”며 “미국 현지 대학 병원 등과 협력해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보다 빠른 임상시험과 인허가, 비즈니스 기회 창출 하고, 성공한 기업들이 UNIST 학생들을 채용하면서 선순환 인력 구조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