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겨울론' 삼성 실적 부진…HBM·AI폰 타고 반등 나서나
by김정남 기자
2025.01.08 16:51:01
지난해 4Q 영업익 6.5조…컨센 대비 18%↓
범용 메모리 공급 과잉…HBM은 양산 지연
연간 매출액 300조원대 회복…역대 두번째
올해 '상저하고' 전망…AI폰·HBM 흥행 관건
[이데일리 김정남 공지유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시장 눈높이를 밑도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당초 증권가는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7조원대까지 계속 낮춰 잡았는데, 그마저도 못 미친 6조원대에 그쳤다.
스마트폰, PC 등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레거시(범용) 메모리 반도체 수익성이 떨어진 데다, 스마트폰 사업을 비롯한 완제품(DX)부문이 고전한 데 영향을 미쳤다. 때이른 ‘메모리 겨울론’ 여파가 본격화할 경우 올해 실적 역시 회복이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다만 바닥을 다진 후 올해 2분기부터 반등하는 ‘상저하고’ 전망이 동시에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75조원, 영업이익은 6조5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8일 공시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65%, 영업이익은 130.5% 증가했다. 다만 직전 분기 대비로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18%, 29.19% 감소했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는 매출액 300조800억원, 영업이익 32조73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해 매출액은 258.94%, 영업이익은 6.57% 각각 증가했다. 매출은 역대 최대였던 지난 2022년(302조2300억원)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2023년 당시 반도체 업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가, 지난해 반등한 덕을 본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로 갈수록 점점 부진을 면치 못했다. IT 업황 둔화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때이른 메모리 겨울론이 현실화하면서다. 스마트폰, PC 등 수요 둔화가 지속한 가운데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같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물량 공세까지 더해지면서 최근 들어 레거시 메모리 가격이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증권가는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IT 수요 부진 등으로 메모리 가격이 지속 하락하고 고수익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 일정이 미뤄지면서 전망치를 계속 낮췄다. 이날 나온 잠정 실적은 시장의 낮아진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 증권가 최근 추정치는 7조9705억원이었는데, 이보다 18% 낮았던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부문별 실적은 공개하지 않았다. 증권가에 따르면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의 4분기 영업이익은 3조원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DS부문은 지난해 2분기 영업이익 6조4500억원으로 메모리 반등을 천명했지만, 3분기(3조8600억원)에 이어 4분기까지 가라앉았다. 삼성전자는 잠정실적 발표 직후 설명자료를 통해 “DS부문의 경우 IT향 제품 중심 업황 악화로 매출과 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DX부문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삼성전자 측은 “모바일 신제품 출시 효과 감소와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실적이 감소했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출시한 갤럭시 Z 폴드6, Z 플립 6의 출시 효과가 더뎌졌고, 애플을 비롯해 중국 화웨이, 샤오미 등과 경쟁이 격화한 여파다.
시장에서는 올해 역시 실적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반도체 업황 흐름이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D램 가격이 8~13% 추가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2기 출범도 리스크에 더 가깝다. 특히 미국의 대(對)중국 규제로 전방 IT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트렌드포스는 “트럼프 2기의 수입 관세에 대비한 노트북 제조업체들의 조기 재고 비축이 D램 가격 하락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와 함께 올해 1분기까지 바닥을 다진 후 2분기부터 실적이 반등하는 상저하고 흐름 전망도 적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엔비디아에 대한 5세대 HBM3E 공급이 시급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래야 HBM을 중심으로 한 AI 업사이클을 탈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가 얼마나 적자 폭을 줄일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예상보다 부진한 수요로 당분간 레거시 분야의 부정적인 영향이 지속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5세대 HBM3E의 본격 공급과 중장기적으로는 기술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D램은 HBM3E 사업 본궤도 진입 등으로 인해 2분기부터 실적 반등에 나설 전망”이라고 했다.
연초 출시하는 스마트폰 신제품 역시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오는 22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모바일 AI 경험의 다음 큰 도약(The Next Big Leap in Mobile AI Experiences)’을 주제로 ‘갤럭시 언팩 2025’ 행사를 연다. 스마트폰 신제품인 갤럭시 S25를 공개할 게 유력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AI 스마트폰을 선보였는데, 올해는 AI 기능을 더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