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강조했지만 ‘굿 이너프 딜’은 빠진 한미 정상회담

by장영은 기자
2019.04.12 16:58:12

한미, 대화 동력 유지 필요성 강조…트럼프, 김정은에 ‘존경’ 표현도
文 역할 당부하면서도 ‘굿 이너프 딜’ ‘중재안’ 관련 지지 없어
남북 정상회담 필요성엔 공감대…文 어깨 더 무거워져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답보 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미 정상회담은 일단 북한과의 대화 동력 유지라는 입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났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드러난 결과만으로 봤을 때는 다소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오벌오피스에서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근본적인 입장차이를 확인하며 ‘노 딜’(no deal·합의 없음)을 선언한 이후 양측은 기존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북·미 양국 모두 문 대통령에게상황을 중재하고 북핵 협상을 촉진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에따라 이번 회담을 통해 문 대통령이 우리측에서 절충안으로 구상한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을 우선 미국측에 설명하고 지지를 얻은 후, 다시 김 위원장의 의사를 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굿 이너프 딜은 기존 정부 입장인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안(案)을 발전시킨 것으로 북한 비핵화 초기 조치에 대한 당근으로 ‘조기 수확(early harvest)’ 방안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공동언론 발표문이나 공개된 양 정상의 발언 등을 봐도 우리측 중재안에 대한 언급이나 지지는 없었다. 북핵 협상 전략에 대한 미국측의 변화도 관찰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3차 북미정상회담도 있을 수 있나’라는 질문에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단계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서둘러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스몰딜’ 가능성과 관련, “스몰딜도 일어날 수 있다. 단계적 조치를 밟을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현시점에선 빅딜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빅딜이란 바로 비핵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핵화와 관련 미국의 기존 입장을 북한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두 정상이 만나서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놨고, 대화의 필요성과 한반도 평화체제 달성에는 공감했지만 북한을 유인할 수 있는 결정타가 부족했다”면서 “스몰딜이 가능하다고 한 부분도 전체 맥락에서 보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 후 단계로서 가능하다고 한 것으로 기존 입장과 차이가 없다”고 분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의 설명을 보니 외교적인 수사로 가득해 이번에 별로 성과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고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측의 의중을 파악해 주길 바란다며 대화의 문은 열어뒀다.

정세현 전 장관은“조금 기대를 걸 수 있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한의 의사를 빨리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한 부분인데, 북쪽에 전달할 어떤 메시지를 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l

문재인 대통령이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또는 남북접촉을 통해 한국이 파악하는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알려달라”라고 요청했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김 위원장의 관계는 매우 좋다. 김 위원장은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이며, 이런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김 위원장과 북한 주민에게 행운을 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비해서도 훨씬 나은 대북관계를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대화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회담이 성과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 가기 전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깨가 무거워 진 것만은 분명하다”면서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서 온 꼴’이다. 미국측에서 비공식적으로 문 대통령에 쥐어준 패가 있다면 상황이 낫긴 하겠지만 미국과 북한을 모두 설득해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이 막중하단 점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