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CB 손본다…소액주주 챙기고 대주주 이익은 차단

by김보겸 기자
2024.01.17 17:34:42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인적분할시 자사주 신주배정 금지
CB 전환가액 리픽싱 방식 합리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추진 안 해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정부가 올해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로 자사주와 전환사채(CB) 제도를 개선, 대주주 사익추구 차단에 나서기로 했다. 인적분할로 대주주가 불합리하게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고, 전환사채 공시를 강화하는 등 대주주가 편법으로 지배력을 확대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그간 소액주주들이 바라왔던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번 정책과제 추진에서 빠졌다. 기업의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손꼽히지만, 의무화할 경우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M&A)세력에 대항할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을 잃을 수 있다는 산업계 우려를 고려했다는 평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금융 부문 사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투자자 친화적인 자본시장을 조성하겠다”며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일반 투자자들도 편리하게 주주총회에 참여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민생 토론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열렸다.

윤 대통령도 “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성장하고 국민은 자본시장 상품 투자를 통해 자산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며 “소액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전자 주총을 제도화하는 등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업무보고에 따르면 금융위는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신주배정을 금지하고 일정 규모 이상 자사주를 보유하면 공시의무를 부과할 방침이다. 자사주를 처분할 경우에는 처분 목적 등을 공시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CB 공시도 강화한다. 콜옵션(매수청구권) 행사자 지정 시 공시의무를 부과하고, 발행회사가 만기 전 CB를 취득할 때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전환가액 산정·조정(리픽싱)방식을 합리화해 대주주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 유인을 차단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사모 CB 전환가액 산정 기준일을 명확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에 회사와 함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해 상법 개정을 추진하지는 않기로 했다. 법무부는 이미 상법에 이사의 책임 규정이 존재하고 있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봉진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은 “일반 조항인 충실의무 조항에 주주를 포함하거나 그 조항을 정비하는 것만 가지고는 주주 보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정부는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소액주주들의 편리한 참여를 위해 전자주주총회를 도입하고 주주 기준일 상한을 축소해 공의결권(빌린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다. 2023년 상장회사 주총백서에 따르면 주주총회가 30분 이내에 끝나는 비율은 67%이며 주주의 10% 미만이 참석한 경우가 75% 수준이다. 주총에서 주주제안 안건이 한 건도 없는 경우도 97%를 넘는 등 주총에 소액주주 의사가 반영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법무부는 전자주총을 도입해 소액주주가 실질적으로 주총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물적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을 방지하기 위해 비상장법인도 물적분할 시 반대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안도 추진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안도 추진 정책에서는 제외됐다. 앞서 금융위 정책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 측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사주 소각으로 유통·발행 주식이 줄어 주당순이익(EPS),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이에 대해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자사주 소각 여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의견이 있다”며 “추가적으로 검토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