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부자’ 삼성전자, 자회사서 거금 20조 빌린 이유는

by이다원 기자
2023.02.14 19:12:48

전년 규모 투자 위해 디스플레이서 차입
반도체 업황 둔화에 수익 떨어져…올해도 깜깜
삼성D,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 내며 순항

[이데일리 이다원 기자] 반도체 혹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반도체 투자를 위해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린다.

삼성전자(005930)는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단기 차입하기로 했다고 14일 공시했다.

이자율은 연 4.60%이며 차입 기간은 오는 17일부터 2025년 8월 16일까지다. 차입 금액은 지난 2021년말 별도 기준 자기자본 10.35% 규모다.

삼성전자가 자회사로부터 20조원이란 거금을 단기 차입키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투자를 계획대로 이어가기 위해서다. 침체한 반도체 업황 속에서 경쟁력을 한 발 앞서 확보하겠단 구상이다.

그간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 왔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시설투자에 53조1000억원을 투입하며 사상 최대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메모리·파운드리 등 반도체의 경우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투자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47조9000억원을 반도체 시설투자에 썼다.

삼성전자는 올해 투자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전년과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언급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시설투자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올해도 반도체 업황 침체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자회사 차입’이란 비상대책을 사용한 모양새다.

지난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43조3766억원으로 전년 대비 16% 줄었다. 실적을 떠받치던 반도체 사업이 업황 둔화로 주춤한 영향이다. 4분기 DS(반도체) 영업이익은 27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7% 감소했다.

올해 시황도 쉽지만은 않다. 메모리 반도체 재고 조정과 수요 약화가 이어지면서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20조원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온다. 반도체 부문은 올해 1분기 적자까지 예상된다.

반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모바일 실적이 순항하며 영업이익 5조9500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33.6% 늘어난 성과를 냈다. 사상 최대 수준이다.

‘현금 부자’로 알려진 삼성전자가 자회사 차입이란 수단을 쓴 점도 눈에 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44조5154억원이다. 현금성 자산으로 볼 수 있는 단기금융상품도 83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확보한 현금성 자산은 해외 자회사 배당 등으로 나뉘어 있어 당장 끌어오기 힘든 경우가 많다. 자회사 차입이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이었던 셈이다.

삼성전자는 향후 반도체 업황 개선이 예상되는 만큼 여유 현금이 생기면 이번 차입금을 조기 상환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해 시황도 만만찮겠지만 반도체 사업에는 지속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투자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