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1분기 역성장 '경고'…"사실상 5월 인하 예고한 것"

by장영은 기자
2025.04.17 16:41:29

"올해 성장경로 2월 전망 하회…1분기 역성장도 가능"
추가 금리인하 시기와 폭 5월 경제전망 보고 결정
이창용 "한미 금리차 고려하지만 국내 경기 우선"
전문가 "5월 인하 확실시…올해 성장률 1% 초반 예상"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우리나라 경제가 뒷걸음질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국내 악재와 주력 품목의 수출 둔화까지 겹친 여파가 ‘마이너스 성장률’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전망했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1.5%) 하향 조정도 기정사실화됐다.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강도 관세정책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이 당초 예상보다 클 것으로 보여서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다음달 경제전망을 수정하면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용 총재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경기는 내수와 수출 모두 둔화되면서 1분기 성장률이 당초 전망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한국은행)


한은은 17일 ‘경기상황 평가’를 통해 “올해 우리나라의 1분기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인 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되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지난 2월 종전 0.5%에서 0.2%로 하향 조정됐으나, 이후 예상치 못한 악재가 추가로 발생하면서 성장률이 더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와 미 관세정책 우려 △영남 지역 대형 산불 △일부 건설 현장의 공사 중단 △고성능 반도체(HBM) 수요 이연 등이 거론됐다.

한 마디로 내수와 수출이 모두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약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대비 역성장을 기록한다면 지난해 2분기(-0.2%) 이후 9개월 만이다. 작년 2분기는 직전 분기에 1.3%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있었지만,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전기대비 0.1% 증가에 그쳤다. 올해 1분기 역성장이 현실화한다면 더 뼈아픈 성적표일 수밖에 없다.

1분기 경기 부진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직간접적인 영향까지 생각하면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됐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기존 전망치인 750억달러를 밑돌 것이란 예상이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성장률이 어느 정도 조정될지는 △향후 무역협상의 진행으로 국가별 최종 관세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언제 어떤 규모로 편성될지 △정치 불확실성 완화로 경제심리가 얼마나 빨리 회복될지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아직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최근 급격히 늘어난 외환시장 변동성 추가 확대 우려와 토지거래허가제도 일시 해제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를 재차 부추길 가능성 등을 고려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이 총재는 이날 대내외 불확실성이 전례 없이 큰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금리 인하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경제 성장률만 놓고 봤을 때는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미 관세정책의 부정적인 영향 △정부에서 추진 중인 필수 추경의 효과 △금리 인하에 따른 금융안정 측면의 부작용 등을 조금 더 면밀히 분석해 5월 경제 전망과 함께 금리 결정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정책금리 인하가 지연되면서 한은의 통화정책도 제약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국내 경기를 우선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우리가 미국과 기계적으로 금리 차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없다”며 “2023년 이후로는 미국 금리정책과 상당폭 디커플링(탈동조화)해서 왔기 때문에 국내 경기를 우선하되 당연히 금리 차를 통한 환율의 영향 이런 것들은 같이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달 경제 전망의 내용에 따라 연내 추가 금리 인하의 횟수가 조정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앞서 이 총재는 지난 2월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금통위 회의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연내 1~2회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날 “기준금리를 앞으로 2회 이상 더 낮출 가능성이 있을지는 5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하향 폭이 얼마나 될지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다음달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 초반으로 낮추고, 금통위는 경기 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오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과 기자회견의 입장은 상당히 비둘기파적(통화완화 선호)이었다”며 “5월 업데이트된 관세정책이 반영된 수정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4번째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백윤민 교보증권 수석연구위원도 “5월 25bp(1bp= 0.01%포인트) 기준금리 인하를 포함해 3분기에 추가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연내 한은 최종 기준금리에 대해서는 당초 예상인 2.25% 수준을 하회할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1분기 실적치와 관세 리스크를 감안하면 올해 연간 성장률은 1.1% 수준까지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1.1~1.2% 정도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것”이라고 봤다. 이번 금통위 전에 올해 한국의 1분기 역성장 가능성을 제시한 노무라증권은 산불 사태와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를 이유로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5%에서 1.2%로 낮춘 바 있다.

표시된 부분은 우리나라 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기간. (자료= 한국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