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에 나온 꿈의 기술…“슈퍼컴보다 빠르고 철통보안”[미래기술25]

by최훈길 기자
2022.11.15 12:30:00

1400만개 미래 수초 만에 분석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나노보다 작은 양자로 슈퍼컴보다 30조배 빠른 계산
무작위 암호화 특성으로 해커도 못 뚫는 보안 가능
미래 산업 생태계 흔들 기술, 미중일 패권경쟁 시작
양자기술 첫 협력센터 출범, 한미 기술 협력 ‘신호탄’

양자기술(Quantum Technology)은 미래기술의 ‘끝판왕’으로 불립니다. 슈퍼컴퓨터보다 빠르고, 기존 암호기술보다 탄탄한 보안 시스템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자기술이 미래의 판도를 바꾸고 세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옵니다. 미국·중국·일본 등 세계 각국과 구글·IBM 등 글로벌 기업들이 양자기술 연구에 뛰어든 이유입니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단 하나뿐이야.”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어벤져스는 우주 인구의 절반을 몰살시키겠다는 최강 빌런(악당) 타노스를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닥터 스트레인지는 불과 몇초 만에 1400만605개의 미래를 봅니다. 그리고 나서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에게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하나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양자기술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양자는 나노미터(nm) 10분의 1 수준의 아주 미세한 크기로 빠르게 움직입니다. 나노보다 작은 양자의 특성을 이용하면 기존 컴퓨터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빠른 정보 처리가 가능해집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순식간에 1400만개 넘는 미래의 경우의 수를 체크한 것과 비슷합니다. 양자컴퓨터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연산을 하는 차세대 미래 컴퓨터인 셈입니다.

얼마나 빠른 연산이 가능할까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양자컴퓨터는 현재 일반적인 컴퓨터보다 30조배 이상 빠른 연산이 가능합니다. 양자 특성을 이용하면 슈퍼컴퓨터로 100만년 이상 걸리는 게 양자컴퓨터로는 평균 10시간, 빠르면 1초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사용되는 전략소모량을 현재 30MW에서 0.05MW로 600분의 1 수준으로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양자기술은 보안성까지 우수합니다. 누군가 도청을 시도해 정보를 가로채려고 하면 비누 거품 터지듯이 신호 체계가 붕괴돼, 도청을 원천 차단합니다. 특정한 패턴 없이 무작위로 암호화 하는 것도 가능해, 해커가 침입하면 곧바로 탐지합니다. 그리고 해커가 뚫지 못하게 ‘철통보안’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통신망과 연결되는 양자기술은 5G·6G(세대) 이후 해킹 위험을 차단할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처리, 해커도 못 뚫는 보안 기능을 가지게 된 것은 양자 고유의 특성 때문입니다. 현재 컴퓨터는 0과 1의 이진법에 따라 ‘비트(bit)’로 처리 능력이 표현됩니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중첩·얽힘 등 고유의 특성에 따라 이진법을 벗어난 연산이 가능합니다. 이는 비트보다 더 작은 ‘큐비트(qubit)’를 기반으로 합니다. ‘기업 실적이 퀀텀 점프(Quantum jump)했다’는 말은 이 같은 양자의 놀라운 특성에서 유래한 겁니다.



양자 특성을 이용하면 슈퍼컴퓨터로 100만년 이상 걸리는 게 양자컴퓨터로는 10시간 만에 처리할 수 있다.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양자기술은 미래 산업 생태계를 바꿀 것이란 기대가 큽니다. 100만 년 이상 걸리는 것을 빠르면 1초 만에 처리하는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전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명이 오래가는 전기차 배터리, 불치병을 치료하는 신약 개발, 인공지능(AI) 고도화, 급변하는 시장에 대비한 금융 신상품 개발, 그린 에너지까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양자기술을 놓고 패권경쟁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2018년에 국가양자과학법을 제정해 양자기술을 미국의 안보를 위한 전략기술로 지정했습니다. 현재 1조원 넘게 양자기술 개발에 투자 중입니다. 중국은 2017년에 세계 최초로 양자통신위성을 발사하고 17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일본은 양자기술, AI, 바이오를 3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추격전’에 나섰습니다. 2022년 초 이뤄진 한미정상 회담의 결실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백악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월2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양자기술 협력센터 개소식을 열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양자기술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신호탄’을 쏜 것입니다.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양자센싱 등 3대 양자기술 분야에서 양국 공동연구의 결실이 맺어질지도 주목됩니다.

미국 대비 우리나라의 양자기술은 약 81.3% 수준이다. 단위=%.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19년 ICT 기술수준 조사)


다만 양자기술이 전면적으로 상용화되기까지는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양자 컴퓨터가 나오기까지 완벽한 재료 및 시스템 개발 등 넘어야 할 산도 많다고 합니다. 양자기술이 발전해 아예 풀 수 없는 암호를 만들어내면, 정부의 정당한 법 집행까지 무력화 될 것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니라 빌런 타노스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입니다.

그럼에도 양자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양자 기술이 현실에서 실현됐을 경우 기존 산업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만 넋 놓고 있다가는 양자기술 분야의 지적재산권(IP)과 특허를 모두 뺏길 수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국제표준을 모두 선점하면 이미 때가 늦습니다. 바이든, 구글, IBM 등이 양자기술 선점에 나선 것을 주목하는 게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