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우디 모래바람도 女風 막지 못했다

by신정은 기자
2015.12.14 16:34:00

사우디 건국 83년만에 첫 여성 참정권 부여
메카 등에서 女당선자 속속 배출…20명선 될듯
여성 유권자 투표율 82%…남성 두배 육박

사우디아라비아 홍해 연안 도시 제다의 한 투표소에서 여성 유권자가 12일(현지시간)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있다. 사우디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것은 1932년 건국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남여 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로 손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여풍(女風)을 막지 못했다. 사우디가 건국한 지 83년만에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12일(현지시간) 지방선거에서 여성 선출직 의원이 대거 탄생했기 때문이다.

AP통신은 사우디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20명의 여성 후보가 당선됐다고 13일 보도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전체 지방의회 의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106명을 선출한다. 나머지 3분의 1은 중앙 정부에서 직접 임명한다.

이 지방선거에서 뽑히는 의원수 2106명을 고려하면 여성 당선자 20명은 전체 지방 선출직 가운데 1%를 차지하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성이 참여한 첫 선거에서 이 정도의 의석을 차지했다는 것만으로 역사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선거 입후보자 6917명 가운데 여성은 979명으로 14%가 조금 넘었다.

첫번째 여성 당선자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주(州)의 북쪽 마드라카 선거구에 출마한 여교사 살마 빈트 히자브 알오테이비다. 그녀는 남성후보 6명과 다른 여성후보 2명이 펼치는 경쟁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오사마 알-바르 선거위원장은 설명했다.

이밖에 사우디 전역에서 여성 당선자가 나왔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수도 리야드를 비롯해 상업도시 제다, 메카, 북부 알자우프, 동부 알이흐사 등에서도 여성 후보가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투표율에서도 ‘여풍’은 확인됐다. 여성 투표율은 남성의 두 배에 육박했다. 하마드 사드 알-오마르 사우디 선거관리위원회 대변인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약 13만명의 여성이 유권자로 등록했으며 이 가운데 82%인 10만6000명이 투표했다고 밝혔다.



반면 남성 유권자는 여성보다 10배 이상 많은 약 135만명이 등록했지만 60만명만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은 44%에 불과했다. 여성 투표율이 남성의 두 배에 육박한 것이다. 이번 선거 전체 투표율은 47%를 기록했다.

홍해 연안 도시 제다에서는 여성 3대가 함께 투표하기도 했으며 투표소를 나온 여성들은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특히 고학력자가 많은 대도시뿐 아니라 미개발 지역에서도 투표장으로 향하는 여성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사우디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것은 1932년 건국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여성 후보들이 유권자들과 얼굴을 맞대는 선거운동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여성 후보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하거나 호텔 등 실내에서 여성 유권자들에게 공약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유세했다.

여성 유권자 등록이 적었던 것 역시 남성 후견인제도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우디에서는 여성이 운전을 직접 할 수 없고 남성 후견인제를 둬 결혼이나 여행, 고등교육을 포함한 여성의 전반적 삶을 제약한다.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의 사라 윗슨 중동 부문 디렉터는 “사우디 여성의 참정권이 여러 걸림돌에 부딪혔다”면서 “그러나 이번 선거는 여성들이 선거에 계속 참여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