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제도권 첫발…암호화폐 40% 쥔 '큰손'의 조작, 막을 수 있을까

by김형욱 기자
2017.12.11 19:28:54

비트코인 美서 첫 선물거래…시카고상품거래소도 내주부터 거래
소수 세력에 시장교란·급등락 심각…결함·해킹위험 등 불안 여전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비트코인이 선물(future trading) 거래를 통해 미국 제도권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상장지수펀드(ETF)화하려는 움직임도 더 빨라질 조짐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미래를 단언하기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10일 오후 5시(한국시간 11일 오전 8시)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선물 거래를 시작했다. 비트코인이 생긴 2009년 이후 8년 만에 제도권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선물 거래란 투자자가 해당 상품이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 예측해 그 미래 가치를 사고파는 것이다. 시장에서 금과 곡물, 원유 같은 상품에 대한 선물 거래는 보편화 돼 있다. 비트코인이 선물 상품에 포함된다는 건 그 이름처럼 화폐는 아니지만 ‘상품’이란 형태로나마 기성 금융권에 데뷔한다는 걸 뜻한다. 더욱이 선물거래가 활성화한다면 현재와 같은 널뛰기 시세를 억제할 수단이 돼 비트코인의 안정·대중화 속도를 더 빠르게 하리란 기대감도 나온다.

비트코인의 기성 시장 진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CBOE보다 더 큰 규모의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도 정확히 일주일 후 별개의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하기로 했다. 비트코인 억만장자이자 코인거래소 제미니(Gemini) 설립자인 윙클보스 형제는 올 초부터 비트코인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시도하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사기 위험 등 불확실성을 이유로 올 초 승인을 거부했으나 선물 거래를 통해 안정성을 확립한다면 ‘상품’으로선 금융 시장에 안착하리란 전망도 나온다. 웡클보스 형제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금을 대신할 수 있다”며 “현 3000억달러(약 330조원)인 비트코인 시가총액도 결국 금 시가총액 6조달러(약 6600조원)를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20배는 커지리란 것이다.

윙클보스 형제. AFP


그러나 암호화폐에 비교적 너그러운 미국 내에서도 시기상조란 주장이 나온다. 여전히 해킹이나 기술적 결함, 가격 조작 등 우려 때문이다. 미 휴스턴대 금융 전문 교수 크레이그 피롱은 10일(현지시간) 자신의 블로그에 “(비트코인 선물 거래는) 괴물처럼 거대한 몸뚱이를 가냘픈 다리로 지탱하는 격”이라며 비트코인 시장 자체의 불확실성을 꼬집었다. CME나 CBOE는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이들이 가격 산정의 지표로 삼는 비트코인과 코인거래소의 불안정성까지 담보할 순 없다는 것이다.



CME는 비트코인 선물 거래의 지표로 삼기 위해 비트스탬프(Bitstamp)와 GDAX, 잇비트(itBit), 크라켄(Kraken) 네 곳의 코인거래소의 비트코인 가격을 참고하고 있다. 또 CBOE는 윙클보스 형제가 설립한 제미니 1곳의 가격을 활용한다. 이 다섯 곳 모두 정부 규제에 맞춰 돈세탁 금지 등 악용 가능성을 줄이려는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이곳 모두 거래가 몰렸을 때 서버가 다운되는 등 기술적 결함에선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초로 1만달러를 돌파하던 11월29일엔 CME그룹이 기준으로 삼으려는 비트스탬프와 GDAX 등 수많은 거래소의 서버가 일시 중단됐다.

더 극단적인 위험으론 2014년 마운트곡스(Mt.Gox)의 해킹 공격 사건이 꼽힌다. 당시 세계 최대 비트코인거래소였던 이곳은 당시 해킹을 통해 시가 4억7000만달러(약 5133억원)어치의 비트코인을 도난당했다. 당국의 규제에도 수많은 코인거래소는 여전히 돈 세탁의 온상이 되고 있다. 비트스탬프 최고경영자(CEO) 네이츠 코드리츠는 이에 “특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거래소는 그 능력의 한계로 도태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CME 역시 지표로 삼는 협력 코인거래소를 늘리는 방식으로 상품 안정화를 모색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장을 교란하는 ‘큰 손’들의 가격 조작이다. 블룸버그통신 분석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현 유통량 40%는 ‘고래’라 불리는 약 1000명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 고래 일부만 움직여도 시장이 휘청일 수 있다. 비트코인은 최근에도 이틀 만에 40%씩 급등락하는 등 가파른 변동성을 보이고 있지만 뚜렷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는다. 애이탄 골먼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 규제위원장은 “유동성이 충분치 않은 모든 새로운 상품은 조작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현 선물거래는 기술적 결함 우려를 의식한 나머지 상품을 소규모화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로도 조작이 더 쉽다. 코인힐스닷컴에 따르면 CME의 네 파트너 거래소는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약 10%에 불과하다. 3년차 거래소인 제미니의 경우 올해 하루 평균 거래량이 130만달러(약 140억원)로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국가에 따라 많게는 10~30%까지 차이 나는 비트코인 가격을 선물 시장에서 제대로 반영할 수 없을뿐더러 조작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특정 거래소의 시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암호화폐 업계에서도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시기상조란 지적이 나온다. CME·CBOE에 맞서 비트코인 선물 거래 플랫폼 개발을 추진 중인 신생기업 레저엑스의 CEO 폴 초우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시장은 아직 미성숙 단계”라며 “기성 거래소가 비트코인 선물 거래에 실패한다면 비트코인을 오히려 수개월 전, 수년 전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이데일리 신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