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브렉시트 D-17…남은 선택지는 노딜과 시한연장뿐

by방성훈 기자
2019.03.13 15:45:21

위기의 英메이, 줄어드는 선택지…좁아지는 입지
英의회, 13일 노딜 배제하고 14일 브렉시트 연기할 듯
EU "브렉시트 연기는 고려…재협상은 불가"
조기총선·제2국민투표 가능성…英정계 다시 혼란 속으로

사진=AP
[이데일리 이준기 뉴욕 특파원 방성훈 기자] 오는 29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17일 남겨두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제 두 개뿐이다. 아무런 합의 없이(노딜·No deal) EU를 떠나느냐, 아니면 타협을 위한 시간을 조금 더 벌어두느냐. 하지만 노딜 브렉시트는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너무 커서 사실상 남은 옵션은 시한 연장 하나뿐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브렉시트 시기를 늦추더라도 그 기간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렇다고 EU나 의회와의 추가 합의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조기총선, 제2국민투표, 메이 총리의 자진 사퇴부터 브렉시트가 아예 취소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영국 의회는 12일(현지시간) 메이 총리의 두 번째 브렉시트 합의안도 부결시켰다. 이날 영국 하원에선 정부의 EU 탈퇴협정 및 미래관계 정치선언, 안전장치(백스톱) 관련 보완책을 놓고 찬반 투표가 진행됐다. 633명 중 391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찬성은 242표로 149표 차이였다. 영국 의정 사상 네 번째로 큰 표 차이다.

백스톱은 영국령에 속하는 북아일랜드와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소속인 아일랜드 간 국경장벽이 생기는 걸 막고자 당분간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조항이다. 지난 1월 15일 첫 번째 합의안이 230표(반대 432표·찬성 202표)라는 사상 최대 격차로 부결된 것도 이 조항 때문이다.

영국 정치권은 이 조항 때문에 영국이 EU를 영원히 떠날 수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이에 메이 총리는 지난 두 달 동안 EU와 재협상을 벌여 백스톱을 무기한 연장할 수 없도록 합의했다. 추가 양보를 얻어낸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가결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이날 투표 직전 조프리 콕스 법무상이 ‘법적 의견서’를 통해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비자발적으로 무기한 구속될 위험은 낮아졌지만, 완전히 제거된 건 아니다”라고 경고한 것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시간이 없는 만큼 메이 총리도 의회도 재빨리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표결 직후 성명을 내고 예정대로 13일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할 것인지 하원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가결되면 EU와 약속한 유예기간 적용 없이, 즉 아무런 합의 없이 오는 29일 이후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빠지게 된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 일부 강경파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노딜 브렉시트는 피하자’는 입장이다. 영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줄 수 있어서다.

결국 오는 14일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브렉시트 연기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부결되면 역시나 노딜 브렉시트 수순을 밟게 된다. 반면 가결되면 27개 EU 회원국들로부터 승인을 받은 뒤 시간을 벌 수 있다. 오는 21~22일 EU 정상회의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메이 총리는 “만일 의회가 연장안에 찬성한다면 EU 측에 영국이 연장을 통해 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전달해야 할 것”이라며 “제2국민투표를 원하는지, 여전히 합의 하에 EU를 떠나길 원하는지, 아니면 EU 잔류를 원하는지 분명히 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얼마나 EU 탈퇴 시기를 늦출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앞서 메이 총리는 5월 말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를 감안하면, 6월 말까지만 연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보수당 평의원 모임 ‘1922 위원회’ 의장인 그레이엄 브래디는 “브렉시트가 무기한(endless) 연기될 수도 있다”면서 “브렉시트 연기는 영국 내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AFP PHOTO)
탈퇴 시기를 미룬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우선 EU와의 추가 협상은 불가능해 보인다. 장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은 전날 “세 번째 협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영국 정치권에선 조기총선 가능성이 대두된다. BBC방송은 “메이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 집권당 내부에서도 조기총선 얘기가 오가고 있다. 또 의원들이 메이 총리의 사임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가디언도 “메이 총리의 퇴출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1야당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은 “메이 총리의 합의안은 이미 명백히 죽은 것이다. 메이 총리는 단지 시간을 끌고 있다”면서 “조기총선을 개최해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제2국민투표 가능성도 다시 솔솔 나오고 있다. 아울러 메이 총리가 스스로 물러날 수 있다거나 EU에 잔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