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성범죄 전과자 PD 사칭해 여대생 유인…법무부는 경고만

by남궁민관 기자
2021.09.08 18:00:00

전자발찌 연쇄 살인 강윤성 사건 충격 가시기도 전에
PD 사칭해 여대생들 만나려 한 성범죄 전과자 논란
재범 위험에도 현행법은 '경고'뿐…처벌도 '벌금형' 수준
"법 실효성 없어", "보호관찰 촘촘히…위반 시 처벌 받는단 인식 높여야"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찬 성범죄 전과자가 방송사 PD 등을 사칭해 여성들에게 만남을 요구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지만, 현행법상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전자발찌 훼손 전후 두 명의 여성을 연쇄 살해한 강윤성 사건이 발생하자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인력·예산 부족의 한계를 인정하며 서둘러 전자감독 제도 개선책을 내놨지만, 정작 근본적인 법 제도 개선엔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윤성이 7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사진=뉴스1)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검은 보호관찰소의 준수 사항 위반에 대한 수차례 경고를 무시하고 직업을 속여 여성들에게 접근한 40대 김모 씨에 대해 ‘전자장치 등에 관한 법률(전자장치부착법)’ 위반 혐의로 수사중이다. 강제추행 등 네 차례 성범죄 전과가 있는 김 씨는 지난해 12월 만기 출소해 전자발찌를 착용한 전과자로, 출소 이후 올해 2월까지 자신을 방송사 PD로 소개한 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주겠다’며 여대생들에게 여러 차례 만남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전자발찌를 차고서도 이 같이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행법상 그를 강력하게 처벌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여대생들에게 특별한 위해를 가하지 않았고 재산상 이득 없는 단순한 ‘사칭’은 처벌이 어려운 데다, 전자장치부착법상 준수 사항 위반도 그 기준이 모호할 뿐더러 처벌 수준 역시 약한 상태다. 실제로 관할 보호관찰소는 김 씨에게 준수 사항 위반을 알리고 경고 조치까지 했지만, 김 씨는 처벌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범 가능성을 막겠다는 전자장치부착법의 부실함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전자감독 제도 주무 부처인 법무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강씨 연쇄 살인 사건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전자감독 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녀 인력·예산 부족을 거듭 호소하면서도 정작 핵심 내용인 처벌 강화 등 법 개정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조차 없었다.



현행 전자장치부착법 제 39조는 전자발찌 착용자가 △피해자 등 재범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는 특정인에의 접근 금지 △특정 범죄 치료 프로그램의 이수 등 준수 사항을 정당한 사유 없이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보호 관찰 등에 관한 법률(보호관찰법)’ 제 32조에서는 준수 사항을 위반해 경고를 받은 후 다시 위반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씨는 이 같은 보호관찰법상 준수 사항 중 △피해자 등 재범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는 특정인에 대한 접근 금지를 어긴 것인데, 조항 자체가 모호하고 그 처벌 역시 매우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준수 사항 위반 시 보호관찰관이 즉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처벌이 아닌 경고에 불과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가령 ‘재범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는 특정인’ 조항을 보면, 그 특정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법 조항이 모호하고 처벌 수준 역시 미미해 위하력(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위협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려는 힘)이 떨어져 실효성이 없다”며 “아마 김 씨 역시 벌금형 정도 받을 것으로 보이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보호관찰관의 업무 영역을 명확히 하고 준수 사항을 보다 구체화함으로써 전자발찌 부착자에게 준수 사항 위반 시 적발·처벌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발찌 훼손 등에 대한 처벌은 그나마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이 역시 사법부 판단은 관대한 편이라 실효성 논란이 적지 않다. 구체적 처벌 수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평균적으로 징역 8월 또는 벌금 440만 원을 선고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성년자 강간으로 지난 2005년 징역 8년을 선고 받은 한 성범죄자는 출소 후 2015년 전자발찌를 가위로 1.2㎝ 절단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원이 “효용을 떨어뜨리지 않았다”며 해당 혐의에 무죄를 선고해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이후 전자발찌 훼손 미수범 역시 처벌한다는 법 조항이 신설되기 했지만, 전자발찌 훼손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보여준 대표적 선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