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주총 확산 속 주주명부 사각지대…“주주 개인정보 노출 취약”
by박정수 기자
2026.01.23 14:17:42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전자주주총회 의무화와 주주행동주의 확산으로 소액주주의 권한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주총에 참여하고, 주주제안과 의결권 행사가 일상화되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주주 민주주의’가 한 단계 진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 같은 변화의 이면에서 주주 개인정보 보호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챗G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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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주행동주의를 매개하는 온라인 플랫폼과 의결권대리행사 권유업체가 늘어나면서, 특정 상장사의 주주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구조가 일반화되고 있다. 이들 입장에서는 특정 상장사의 주주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통로가 중요해졌고, 그 결과 ‘내가 투자한 회사의 다른 주주들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일상화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주주가 이러한 접촉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기준일 이후 주식을 처분했거나 의결권 행사 계획이 없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주주로 분류되는 순간 이름과 주소, 보유 주식 수 등 개인정보는 권리 행사 의사와 무관하게 외부로 제공될 수 있다. 대형 상장사의 경우 수십만~수백만 명에 달하는 주주 정보가 제도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정보 침해는 유출되는 순간, 그 자체로 법익 침해가 성립한다”며 “이후 정보가 어떻게 활용될지는 이를 확보한 주체의 판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으며, 주주 개인정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는 이러한 노출을 구조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상법은 단 1주만 보유해도 주주명부 열람·등사를 허용하고 있다. 법원은 예탁결제원이 관리하는 실질주주명부까지 그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주주들의 개인정보가 목적 제한이나 사후 통제 없이 외부로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다.
기술 발전은 위험을 더욱 키운다. 이름과 주소, 보유 주식 수만으로도 인공지능(AI) 분석을 통해 개인별 자산 규모 추정이나 정교한 타깃 마케팅이 가능하고, 보유 패턴과 거래 이력이 결합될 경우 개인의 신용정보 영역에 근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인정보보호법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법제가 원칙적으로는 높은 보호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라는 예외 조항이 폭넓게 해석되면서, 상법상 주주명부 열람·등사 규정처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법령을 근거로 정보 제공이 허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그 결과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제한이나 사후 관리, 정보 폐기 의무는 제도적으로 공백에 가깝고, 주주 개인정보가 보호의 대상이기보다 활용 가능한 정보로 취급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해외 사례는 다르다. 미국은 주주권과 개인정보를 분리해 관리한다. 주주명부에는 대개 증권사나 예탁기관 명의만 표시되며, 개인 주주의 세부 정보는 직접 노출되지 않는다. 의결권 대결이 필요한 경우에도 증권사가 자료를 받아 고객인 주주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개인정보의 직접 이전을 제한한다.
주주는 자신의 정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out)’ 제도도 갖추고 있다. 주주는 자신의 이름, 주소, 연락처 공개를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른바 ‘정보 공개를 원하지 않는 실질주주(Objecting Beneficial Owners)’로 분류된다. 주주권 행사에 필요한 정보 접근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에서 선택권을 부여하는 장치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주명부 열람·등사를 ‘법이 특별히 허용한 경우’로 폭넓게 해석하면서, 제공 이후의 이용 목적 제한이나 정보 폐기 의무에 대한 규율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주주 권한은 강화됐지만, 그에 상응하는 개인정보 보호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다가오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주권 보호와 개인정보 보호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주주 민주주의의 진전이 또 다른 권리 침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장과 제도의 과제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