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美 보조금' 위기의 K반도체, 정부 지원사격에 반색

by김응열 기자
2024.11.27 16:18:55

반도체 인프라부터 R&D까지 전방위 지원
트럼프, 보조금 재검토…삼성·SK 투자 위기
파운드리 1위 TSMC와 격차 확대 불가피
"'안방 지원' 절실…위기 극복에 힘 될 것"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세종=강신우 기자] 정부가 27일 발표한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방안’의 골자는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망 구축 지원과 기업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상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기업이 국내에 마음껏 투자하고 기술력 향상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수출 공신 반도체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가 흔들린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업계도 이 같은 정부 지원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날 정부는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 인프라 사업 중 송전선로 지중화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송전 인프라 사업비는 총 3조원인데 지중화에 필요한 비용만 1조8000억원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인 정부 부담분은 국회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오전 경기 성남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 전력·용수 협약식에 임석한 가운데 용인 클러스터 통합 용수공급 사업 협약 체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완섭 환경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앞줄 왼쪽부터) 윤석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김동섭 SK 하이닉스 사장, 남석우 삼성전자 사장,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사진=뉴시스)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전력 공급계획도 확정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국전력공사 등 관계기관간 협약 역시 이날 체결했다. 국가산단(1·2단계) 및 일반산단(2단계)에 대한 전력공급 계획이 구체화한 건데, 이에 따른 비용 분담(국가산단 2단계 제외)도 논의를 마무리한 것이다.

기업의 R&D 투자 관련 세제 지원도 대폭 확대한다. 국회와 협의해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R&D 장비 등 연구개발 시설투자를 포함한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기업들은 사업화를 위한 시설의 경우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다만 R&D 장비 등 연구개발 시설은 일반 투자세액공제를 적용 받기에 대기업 1%, 중견기업 5%, 중소기업 10%의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을 상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행법상 기본공제에 10%까지만 추가로 공제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계는 이같은 정부 지원을 두고 환영하는 기류다. 투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發) 반도체 투자 리스크가 점점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현재 대표적인 미국 리스크는 반도체 투자 보조금 재검토다. 일론 머스크와 함께 미국 정부효율부(DOGE) 공동수장으로 지명된 기업인 출신 정치인 비벡 라마스와미는 지난 26일(현지시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옛 트위터)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현지 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한 내용을 거론하며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라마스와미가 문제 삼은 건 러몬도 장관이 인터뷰에서 밝힌 보조금 지급 속행 기조다. 러몬도 장관은 “우리가 떠나는 시점까지 (기업에 주기로) 약정한 자금의 거의 전부를 지급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싶다”고 했다.

라마스와미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와 반도체법에 따른 낭비적인 보조금이 1월20일을 앞두고 신속하게 지출되고 있다”며 “DOGE가 이런 ‘막판 계략’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미국 투자를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440억달러를 투자해 64억달러 규모 보조금을 받기로 했고 이미 공장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38억74000만달러를 투자하고 4억5000만달러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미국에서 삽을 뜨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미국의 보조금 지급을 염두에 두고 현지 투자를 결정했다. 만일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삼성전자로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TSMC 추격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TSMC는 트럼프 당선인이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미국 투자에 대한 지원금 66억달러를 받기로 확정됐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가 많은 미국에서 파운드리 시설을 대폭 구축해 사업 육성에 힘을 싣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보조금 지급이 불투명해지면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보조금 지급이 날아가면 SK하이닉스보다 보조금 규모가 큰 삼성전자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며 “TSMC는 예정대로 미국 투자를 진행해 막대한 물량을 받을 수 있겠지만 삼성전자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미국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TSMC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은 보조금 규모가 줄어들더라도 바이든 정부 임기 내에 보조금을 확정하는 게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AI를 빼면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발 리스크로 사업 전략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지원사격을 해준다면 위기 극복에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