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사고 기소 95%가 中企…영세업체 리스크 현실화
by성주원 기자
2024.02.01 17:27:46
50인 미만 확대로 적용 사고건수 급증 전망
기소 38건 중 36건, 유죄 13건 모두 중소기업
예산 부족에 사전 대비 어렵고 사후 대응 남일
정부, 지원 방침…인력 부족에 수사 적체 우려
[이데일리 성주원 서대웅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유예하는 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벼랑 끝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최종 무산됐다. 새해 정쟁보다는 민생을 살피겠다던 국회는 끝내 중소기업인들의 호소를 외면했다.
이에 중소기업계 곳곳에서 법적리스크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 나흘만에 부산의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전국 중소기업인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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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고용노동부와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중대재해사고는 총 1060건 발생했다. 이 가운데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기준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가 642건(60.5%)를 차지했다. 확대 시행 전에 발생한 이 642건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지 않지만 앞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게 될 사고가 전년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 사고 418건 중 대기업(300인 이상 사업장,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800억원 이상 기준)에 해당하는 건 194건(46.4%)이다. 나머지 224건(53.6%)은 중소기업 사례다. 사고 발생 비율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절반씩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까지 검찰이 수사를 마치고 기소 결정한 사건 38건을 놓고 보면 중소기업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38건 중 2건을 뺀 36건(94.7%)이 중소기업 사례다. 게다가 현재까지 법원의 1심 판결이 내려진 13건 모두 유죄가 인정됐고 처벌대상은 모두 중소기업이었다. 재판에 넘겨진 이후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대응 여력에 차이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결과다. 중대재해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사전 컨설팅은커녕 수사과정에서조차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해 자체 대응한 하청업체도 있었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중대재해처벌법 리스크 해소를 돕고 있는 로펌들은 대기업에 비해 열악한 중소기업들의 대응 상황을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 율촌의 중대재해공동센터장을 맡고 있는 조상욱 변호사는 “규모가 작은 건설사나 제조업체 등을 보면 아예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준비작업을 시작조차 못한 경우가 많다”며 “현장에서 보기에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대응하기는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대기업이 기소된 사례가 적은 것은 그만큼 사전 대응이 중요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법무법인 태평양 중대재해대응본부 김상민 변호사는 “이론적으로 중대재해법 제4조에서 제시하고 있는 13가지 의무이행사항을 다 준비하고 이를 이행했으면 무혐의를 받게 된다”며 “다만 그중 1가지라도 빠뜨렸다면 사고와의 인과관계 여부에 따라 기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펌들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사전 대응이 가능한 대기업들은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처벌을 피해갈 가능성이 크지만 기본 인건비조차 부담을 느끼는 중소기업들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현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중대재해대응센터장)는 “컨설팅을 하려면 그 회사의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세세하게 살펴봐야 해서 로펌 입장에서도 인력과 시간이 많이 투입된다”며 “예산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사전 대응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검사 출신 이상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기업들에게만 대응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단속 인력을 늘려서 현장에서 직접 공무원들이 안전관리를 하면서 미흡한 점을 지적하고, 그럼에도 사고가 나면 면책을 해준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제안했다.
| 부산 기장군에 있는 폐알루미늄 수거·처리업체에서 30대 노동자가 작업 중 끼임 사고로 숨졌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된 이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31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고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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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모든 5~49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대진단’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사업장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수준을 자가 진단토록 하고 부족한 사업장엔 컨설팅·교육·기술지도를 연계 지원하는 대책이다.
문제는 인력과 물량, 시간이 부족해 지원 사각지대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법 확대 시행으로 적용받는 영세 사업장은 총 83만7000곳이다. 이중 지난 법 유예기간인 2년간 정부 컨설팅과 기술지도를 받은 곳은 43만곳으로 절반에 그친다. 고위험 사업장 8만곳 중 컨설팅을 마친 곳도 1만6000곳에 불과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장 좋은 해결책은 사전 예방인데 문제는 돈과 사람, 그리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수사 적체 문제는 심화할 전망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사건 처리율은 약 34% 수준이다. 영세 사업장으로 법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서 수사 물량은 2.4배 늘어날 것으로 고용부는 보고 있다. 법이 확대 시행된지 나흘 만인 지난달 31일 영세 사업장 2곳에서도 잇따라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 장관은 법에 따른 신속한 처리를 지시했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 유예안 불발을 환영하면서도 민주당의 분명한 입장 정리를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민주당 의총에서 중대재해법 유예가 부결된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더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유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 1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앞에서 정의당과 노동계 관계자들이 회의장으로 향하는 의원들을 향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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