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이은해·땅투기·대장동 '중대 범죄' 다 놓친다…피해는 결국 국민

by이배운 기자
2022.04.13 16:27:58

檢수사권 축소후 ‘범죄대응 역량 저하’ 가시화…중대범죄 수사 ‘용두사미’
김후곤 대구지검장 “이은해 계곡 살인사건, 검찰 보완수사 요구권 있어서 가능”
경찰 보완·재수사 이행률 56.5% 그쳐…법조계 “수사 신속성·정확성 하락 체감”
“경찰, 고소장 접수 거부하고 고소 취하 종용…국민 개개인에 ...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지난 2019년 6월 경기도 가평 용소계곡에서 발생한 ‘계곡 살인 사건’은 하마터면 묻힐 뻔 했다. 피의자 이은해(31)가 공범 조현수(30)와 함께 남편 윤모 씨(당시 39세)에게 기초 장비 없이 다이빙하도록 강요한 뒤 그의 구조 요청을 묵살해 사망하게 한 이 사건은 애초 경기 일산서부경찰서에서 불구속 송치했다. 이후 인천지검이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아 재수사에 착수해 현재 이들을 지명수배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입법 강행을 당론으로 채택한 가운데, 법조계 안팎에서는 국가의 중대범죄 대응 능력이 무력화되고 사법 체계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전경. (사진=뉴스1)
실제 지난해 초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대폭 축소한 ‘검경 수사권 조정’은 중대 범죄 가해자들이 수사망을 빠져 나갈 구멍만 넓혔다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런 와중에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검수완박 역시 수습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불러오고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찰 수사권 축소에 따른 부작용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사건이다.

지난해 9월 대장동 의혹이 본격적으로 대두됐지만 수사 기관들은 관할 문제를 이유로 차일피일 수사를 미뤘고, 결국 핵심 관계자들에게 증거를 인멸할 시간만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화천대유의 수상한 자금 흐름 첩보를 입수하고도 5개월째 내사만 진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사건 뭉개기’ 의혹을 키웠다.

또 경찰은 지난해 3월 LH 직원의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1년간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였지만 성과는 미진하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도 “국민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점을 안다”고 토로했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이처럼 중대 범죄를 제대로 놓치는 사태가 빈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지난 12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과거 국정농단 사건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이냐는 대안도 나와 있지 않다. 중대범죄에 대한 대응 자체가 무력해지는 것”이라며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 수사권 축소에 따른 국민의 피해는 이미 통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현행 수사 절차 관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국 검찰청에서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한 사건 중 3개월 안에 보완이 이뤄져 검찰에 되돌아온 경우는 절반인 56.5%에 그쳤다. 보완 수사에 3∼6개월이 걸린 사건은 전체의 19.1%였고, 6개월이 넘게 소요된 사건은 11.4%로 조사됐다. 대검 관계자는 “기존에는 검찰이 송치 사건에 대해 경찰에 수사 지휘를 할 경우 3개월 내에 이행되는 게 원칙이었다”며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보완 수사가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12월 소속 변호사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 지연이 심각한가”라는 질문에 응답 변호사 511명 중 341명(67%)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수완박 강행으로 국가가 중대 범죄 대응 역량을 상실하고 결국 애꿎은 국민이 피해를 보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검찰 출신 조주태 변호사는 “현장 일선에 있는 변호사들은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의 신속성과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을 분명하게 체감하고 있다”며 “사건 피해자들의 불편만 커질 뿐, 경찰에서 아예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거나 고소·고발 취하를 종용하는 사례도 잦아졌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경찰 현장에서는 일 잘하고 경력 많은 인재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수사 부서에 배치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며 “이런 현상들이 결과적으로 국민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지 민주당은 제대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현직 검사는 “검수완박은 검사라는 직업을 없애는 차원을 넘어 형사사법체계 한 축을 완전히 없애겠단 것으로, 무너진 사법 체계는 결국 국민적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며 “검사들은 현 상황에 동요하지 않고 각자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각계의 검수완박 저지 노력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