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못 죽여 恨"…용서 구한다던 '전자발찌 연쇄살인범'은 왜 돌변했나

by김대연 기자
2021.09.01 17:48:13

전자발찌 끊고 도주 전후 2명 살해 후 자백
"더 많이 죽이지 못한 게 한, 사회가 X같다"
지난 2017년 '용서 구한다'며 복역 중 기고
전문가 "참회 진심 아닌 듯…반사회적 성향"

[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전과 14범의 강력범이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기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해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과거 “용서를 구한다”던 피의자가 약 4년 만에 “더 많이 죽이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막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시 복역 중이던 피의자가 선처 혹은 가출소 등을 목적으로 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며, 자신의 잘못을 타인과 사회 탓으로 돌리는 ‘외부귀인’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모씨가 8월 3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던 중 질문을 하려는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출소 후 여성 1명을 살해하고 전자발찌를 훼손한 뒤 또 다른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모(56)씨가 지난달 31일 구속됐다. 서울동부지법 심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살인과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강씨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전과 14범인 강씨는 약 16년 전인 지난 2005년 11월 특가법상 강도·절도, 강도상해 등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06년 2심 법원과 대법원도 각각 원심을 확정했다. 특히 12년째 복역 중이던 강씨는 지난 2017년 전국 교정기관에 배포되는 교정 홍보물 ‘새길’ 여름호에 ‘용서를 구할 수 없어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강씨는 기고에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자는 다짐을 하루에도 수없이 할 만큼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며 “제가 피해자였다면 그 강도 범행에 잔혹했던 순간을 잊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저 제가 살아 있는 목숨이 더 죄스럽고 용서를 구할 길이 없다”고 참회 형식의 기고문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강씨는 지난 5월 6일 출소해 약 3개월 만에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하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이중성을 보였다. 강씨는 지난달 26일 집에서 40대 여성을 살해한 뒤 27일 송파구의 한 주차장에서 다른 5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강씨의 폭력적인 언행은 그의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영장실질심사 당일까지 이어졌다. 8월 31일 오전 서울동부지법에 도착한 강씨는 “왜 피해자를 살해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마이크를 들고 있는 기자의 오른손을 왼발로 차면서 욕설을 내뱉는 등 거친 행동을 보였다. 또 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면서도 강씨는 “내가 더 많이 죽이지 못한 게 한이 된다”, “당연히 반성 안 하지, 사회가 X같다”며 폭언을 퍼부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한 강모씨의 모습이 8월 28일 서울시내 CCTV에 포착됐다. (사진=연합뉴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다”던 강씨가 여성 2명을 살해하고도 전날까지 폭언하고 난동을 부린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과거의 참회는 강씨의 진심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라며 “(기고문은) 가출소 심사 등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또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는 악당 같다”며 “모르는 사람을 죽였던 유영철과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범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강씨가) 자신을 탓하고 자책하면 더 우울해지고 위축되기 때문에 타인과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며 “기고문도 가석방 등 빨리 출소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글 같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강씨처럼 범죄 행동의 원인을 왜곡하고 외부로 돌리는 ‘외부귀인’의 모습이 범죄자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자기합리화이자 방어기제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사회가 X 같다”며 강한 불만을 쏟아낸 강씨의 모습에 대해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의자 본인의 책임이 아니고 사회 탓이라고 했던 유영철·지강헌·지존파 등 유명 연쇄살인범의 말이 학습된 상태 같다”며 “본인이 갖고 있는 ‘권력지향적’ 성향과 반사회적인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자포자기 상태에서 공격적 행동으로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사회 탓을 하면서 범행에 대해 합리화한 것”이라며 “진실한 사과와 반성을 했다면 전과 14범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교도소 내에서는 범죄자들의 교화를 돕는 이들이 있어 당시 참회한다는 강씨의 말이 진심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범죄를 수없이 저질러 현재 범죄의 중독된 상태로 보인다”며 “오히려 자신의 절제를 돕는 교도소 생활을 무의식중 바라고 있을 수 있다”고 봤다.

한편, 경찰은 1일 강씨에 대한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강씨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고 범행 동기도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