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전인데 통제부터…금융당국 고강도 관리 착수
by최정훈 기자
2026.02.05 10:30:00
발행 단계부터 범죄 연루 자금 동결·소각 기능 내재 검토
개인지갑·해외거래소 거래도 위험기반 관리 체계로 편입
소액 거래까지 트래블룰 확대…가상자산 추적 범위 넓혀
계좌정지 권한 강화·변호사 등 비금융 직역 AML 도입 논의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금융당국이 올해를 기점으로 가상자산을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안으로 전면 편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동안 가상자산은 금융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규제 공백 논란이 이어져 왔는데, 당국이 이를 기존 금융권과 유사한 관리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하겠다는 신호를 내놓은 것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발행 단계부터 범죄 연루 시 자산을 동결하거나 소각할 수 있는 기능을 구조적으로 내재한 가상자산만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가상자산을 ‘활성화 대상’이 아닌 ‘고위험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책 기조가 분명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5일 공개한 ‘2026년 자금세탁방지 주요 업무 수행계획’을 통해 가상자산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FIU는 중대 민생범죄와 초국가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은행·금융회사 중심으로 구축돼 있던 AML 체계를 가상자산 전반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FIU가 스테이블코인을 정조준한 이유는 사용 확산 가능성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큰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원화나 달러 등 실물자산에 연동돼 있어 결제·송금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당국은 바로 이 지점이 자금세탁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FIU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대중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자금세탁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며 “가상자산이라고 해서 다르게 봐주지 않고, 자금세탁방지 관점에서 동일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금융과 유사한 규율 체계 안으로 넣겠다는 의미다.
업무계획에 따르면 FIU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게도 기존 가상자산사업자와 동일한 수준의 AML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고객확인(KYC), 의심거래보고(STR), 내부통제 체계 구축 등 지금까지 거래소에 적용돼 온 규제를 발행 단계까지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발행 구조다. FIU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때부터 범죄 연루 가능성이 있는 자금을 동결하거나, 사후적으로 해당 코인을 소각할 수 있는 기능을 기술적으로 내재하도록 가상자산 관련 법령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단순한 사후 제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개입 가능한 코인’만 허용하겠다는 설계다.
FIU 관계자는 “발행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동결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설계하라는 것”이라며 “발행자도 금융회사에 준하는 AML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 경우 국내에서 유통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종류 자체가 크게 제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상자산의 또 다른 핵심 인프라인 개인지갑과 해외거래소와의 거래에 대해서도 통제 수위가 높아진다. 지금까지는 국내 거래소에서 개인지갑이나 해외거래소로 자산을 옮기는 데 비교적 제약이 적었지만, 앞으로는 거래 위험도를 기준으로 선별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FIU는 국내 거래소가 개인지갑이나 해외거래소와 거래할 경우, 송·수신인이 동일한 경우 등 저위험 거래만 허용하고 그 외 거래에는 위험기반접근(RBA)을 적용할 계획이다. 위험도가 높거나 거래 상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거래 자체를 제한하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방침이 현실화될 경우, 개인지갑을 기반으로 한 탈중앙화금융(DeFi)이나 해외 가상자산 서비스 이용은 지금보다 제약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국은 이를 전면 차단이 아닌 위험 관리라고 설명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상당수 거래가 제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FIU 관계자는 “무조건 막겠다는 게 아니라 저위험 국가, 저위험 거래소와의 거래는 가능하도록 검토 중”이라면서도 “자금세탁 위험이 있거나 파악되지 않는 거래는 하지 말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 거래의 추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트래블룰도 강화된다. 현재는 국내 거래소 간 100만원 이상 가상자산 거래에 대해서만 송·수신인 정보 제공 의무가 적용되지만, 이를 100만원 미만 거래까지 확대하고 수신 거래소에도 정보 확보 의무를 부과할 계획이다.
FIU는 이에 대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이라며 과잉 규제 논란에는 선을 그었다. 다만 업계에서는 소액·빈번 거래가 많은 가상자산 특성을 고려할 때 거래 편의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상자산과 함께 눈에 띄는 변화는 범죄수익 차단을 위한 계좌정지 권한 강화다. FIU는 ‘중대 민생침해범죄 의심계좌 정지제도’를 도입해 마약, 도박, 테러자금조달 등 중대 범죄와 관련된 계좌를 법원 결정 없이도 정지할 수 있는 근거를 특금법에 마련할 계획이다.
수사기관 요청이 있을 경우 FIU가 의심거래보고 여부를 분석하고 내부 심의위원회를 거쳐 계좌 정지를 결정하는 구조다. FIU 측은 “일반적인 사기 범죄까지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초기에는 제한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기준에 맞춘 제도 정비도 병행된다. FIU는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이른바 ‘특정비금융사업자(DNFBPs)’에 대해 고객확인과 의심거래보고 의무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직업상 비밀유지 의무와의 충돌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관련 직역 단체와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FIU 관계자는 “충돌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어디까지 가능한지 직역 단체와 논의해 단계적 도입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FIU는 금융회사 임원의 AML 책임을 강화하고, 현재 자율 참여로 운영되는 AML 제도이행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검사·제재 과정에서는 위험도가 낮은 사안에 대해 동의명령제 도입도 검토한다. 아울러 2028년 예정된 FATF 상호평가에 대비해 범부처 합동 대응 체계도 구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