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지원하려면 신차 5년 이상 국내 생산해야"

by김형욱 기자
2018.02.26 16:54:20

3대 원칙 토대로 한 첫 가이드라인 제시 "물량도 갖춰야"
6·13 지방선거 앞두고 일자리·지역경제 이슈 매몰 우려도

GM이 폐쇄를 결정한 한국GM 전북 군산공장 이달 중순 모습. 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김상윤 기자] 정부가 ‘한국GM 살리기’의 조건으로 일정 물량 이상의 신차를 5년 이상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조건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눈앞의 일자리, 지역 경제에 매몰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한다면 5~10년 뒤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네럴모터스(GM)측 요청사항인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신차 배정과 관련한 투자 계획이 어느 정도 돼야 받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차 모델과 성격이 중요하며 최소 5년 이상 생산해야 한다”며 “너무 작은 물량이면 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 22일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주주·채권자·노조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장기 생존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이란 3대 원칙을 제시했으나 구체적 조건을 언급한 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신차 배정 같은 조건만으론 당장 5년 뒤에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으리라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6월13일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과 지역사회에 등 떠밀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지분을 늘리는 등 방식으로 의사결정권을 확보하지 않는 한 5년짜리 신차를 배정 받더라도 5년, 10년 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며 “당장 어렵더라도 장기 관점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GM의 현 경영 방침대로라면 한국GM의 미래는 여전히 어둡다. GM은 110년 역사의 전통적 자동차 기업이지만 2013년 메리 바라 최고경영자(CEO) 선임 이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조직을 수익 중심으로 개편하고 이익금을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기술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GM은 이후 유럽 시장 철수를 결정하고, 러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호주에서 공장 폐쇄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비슷한 시기 차량공유회사 리프트에 5억달러(약 5370억원)를 투자하고 신생 자율주행 솔루션 기업 크루즈오토메이션을 10억달러(약 1조700억원)에 인수했다.

한때 1위를 유지했던 세계 판매량도 960만대(지난해)까지 줄었다. 폭스바겐, 르노-닛산, 도요타에 이어 4위로 밀렸다. 그러나 그만큼 수익성은 개선됐다. 기업의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도 올랐다. 2016년 2월 주당 27달러대까지 내렸던 주가는 지난해 9월 이후 40달러선을 웃돌고 있다.

노조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도 필수다. GM 같은 다국적 기업은 각국 공장 생산성을 고려해 신차를 배정하기 때문이다. 한국GM 공장은 148개 GM 공장 중 130위 수준으로 최하위권이다.

한편 산업부 관계자는 이미 폐쇄가 결정된 군산공장에 대해선 “아직 거기까지 논의가 가진 않았으나 충분히 관심을 가질 주제”라며 “고철로 팔거나 제3자 매각, 새로운 형태의 공장 전환 방안 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에 혼선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구조조정은 여러 부처가 개입해 서로 조율해야 하는 만큼 주무부처가 있을 수 없다”며 “굳이 한다면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라고 말했다. 이어 “접촉·발표 창구는 산업부가 하겠지만 모든 업무를 우리가 맡아서 처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부연했다.